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가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입법을 권고한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국회에서도 앞서 29일 관련 법안이 발의돼, 종교계의 반발에 가로막혀왔던 차별금지법 입법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30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 성별 등 차별을 규제하는 개별법이 있지만 다양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포괄적 평등법으로 우리 헌법의 핵심인 평등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평등법 제정에 대한 국제사회 요구와 사회적 공감대도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엔 차별금지법 내지 평등법이 이미 마련돼 있다. 지난 3월 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선 성인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기도 했다.
이날 공개한 법안 시안에서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대신 ‘평등법’이란 이름을 앞세웠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민이 법안 목적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보단 헌법적 가치인 ‘평등’을 강조하는 쪽이 반발 여론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도 녹아 있다. 2006년과 달리 정부가 아닌 국회에 입법을 촉구하는 배경에 대해선 “이번엔 국회가 인권위 시안을 토대로 건설적 논의를 거쳐 법 제정을 주도하는 쪽이 좋을 것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인권위의 시안엔 성별, 장애, 나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21개 차별 사유가 적시됐다. 특히 종교계 일각의 반발이 가장 큰 ‘성적 지향’ 항목과 관련해 인권위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 사유로 성적 지향이 나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 “종교적 자유를 존중한다”면서도 “차별적 관념을 해소하고 평등법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차별 행위에는 직접적인 차별 외에도 간접 차별과 괴롭힘, 성희롱, 차별을 표시·조장하는 광고 등이 포함됐다.
2006년 발표된 시안에 견줘 2020년판 시안에선 악의적 차별과 보복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졌다. 차별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할 뿐 아니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했다. 악의적 차별에 대해선 차별 행위자가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3~5배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차별 시정 의무를 규정한 조항도 포함됐다. 법령을 제·개정하고 각종 정책을 시행할 때 차별 금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다. 코로나19 사태를 반영한 듯 재난 상황에서 긴급조처를 시행할 때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도 담았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차별금지법(평등법)이 21대 국회에서 300명 의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 통과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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