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습관은 무섭다. 한자 ‘女’를 ‘계집 녀’라고 배워서 아직도 이 글자를 보면 ‘계집’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초등학생용 한자책을 보니 이제는 ‘여자 녀’로 바뀌었다(‘어미 모’, ‘아비 부’도 ‘어머니 모’, ‘아버지 부’로 바뀌었고, ‘지아비 부’도 ‘남편 부’라 한다). ‘계집’을 ‘여자’로 바꾼다고 성차별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차별 극복 의지 정도는 보여준다. 배제가 아닌 평등의 뜻풀이가 필요한 이유이다.
말 나온 김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에 ‘계집’이란 말이 들어간 단어를 찾아보았다. 사전 만들 당시 성차별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노비: 사내종과 계집종’, ‘더벅머리: 웃음과 몸을 팔던 계집’, ‘뜬색시: 바람난 계집’, ‘민며느리: 며느리로 삼으려고 관례를 하기 전에 데려다 기르는 계집아이’, ‘본서방: 샛서방이 있는 계집의 본디 남편’, ‘여우: 하는 짓이 깜찍하고 영악한 계집아이’, ‘요부: 요사스러운 계집’. 세상은 바뀌는 데 사전은 제자리걸음이다. 모두 ‘여자’로 바꾸면 훨씬 현대적(!)이다.
‘사내’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지만, 엄연히 둘은 위계가 다르다. ‘사내’는 “‘남자’나 ‘남편’을 이르는 말”이지만, ‘계집’은 “‘여자’나 ‘아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낮잡아 본다’는 것은 시선의 높낮이가 있다는 뜻일 텐데, 그 차이를 줄이는 게 말의 진보다(‘사내’도 ‘남자’로 바꾸는 게 낫다).
※바꾸는 방법: 사전 뜻풀이 파일을 열고 ‘계집’을 ‘여자’로 ‘모두 바꾸기’ 하면 됨. 이 쉬운 걸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