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질량의 두 블랙홀이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영상. 라이고 과학협력단 제공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1929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이 처음 발견했다.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거리와 속도를 관측해 이런 놀라운 법칙을 찾아냈다. 그래서 우주팽창 속도는 그 이름을 따 ‘허블상수’로 불린다. 우주는 얼마나 빠르게 팽창할까? 허블상수는 우주의 구조와 진화, 우주 나이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그 값을 정확히 구하려는 노력은 수정을 거듭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허블상수 전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근래에 허블상수는 두 갈래 값으로 나뉘어 팽팽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주론과 관측 기술이 정밀해질수록 두 갈래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그 값의 한 갈래는 우주론 연구에서 나왔다. 우주대폭발(빅뱅) 직후의 엄청난 고에너지 빛이 식어 이제 잔광으로 우주에 남은 우주배경복사의 관측 자료를 분석해 우주론을 정교화하고 허블상수도 구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플랑크 위성이 2009년부터 4년 동안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자료를 분석한 2014년 연구에서 허블상수(㎞/sec/Mpc)는 67.8로 제시됐다. 326만 광년의 단위 거리(1Mpc)에 두 천체가 있다면 둘은 초속 67.8㎞로 서로 멀어진다는 뜻이다.
다른 갈래는 천체 관측에서 나왔다. 2016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초신성과 변광성들을 관측해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속도를 정밀하게 추적한 천문학 그룹이 허블상수를 73.2로 제시했다. 우주론의 예측보다 더 빠르게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후속 연구를 계속하며 현대우주론의 표준모형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물론 과학이 발전하면서 허블상수는 결국 하나의 값 근처에서 만나리라는 낙관이 많다. 하지만 당장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도 기대를 무색하게 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14일 발표된 우주론 분야 논문에서는 칠레 북부 사막의 아타카마 우주망원경으로 더욱 정밀하게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자료를 분석해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를 다시 뒷받침하는 결론이 제시됐다.
최선을 다하고도 서로 다른 사실을 얻은 것이라면, 각자 연구진실성을 다한 결과라면, 이런 ‘사실의 충돌’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과학의 역사에서는 실험과 연구 방법에서 혁신을 이루거나 새로운 이론과 통찰을 얻거나 제3의 방법을 통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난제를 풀어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에 주목하는 승부 드라마도 흥미롭겠지만, 해법이 정말 막막한 상황에서 어떻게 맞서는 사실들을 검증하며 문제풀이 길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