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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미국만큼만 / 이순혁

등록 2020-07-27 18:10수정 2020-07-28 12:59

이순혁 ㅣ 전국부장

어느덧 미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단다. 연수차 미국에 머물던 4년 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졌던 주변 사람들 모습이 생생하다.

“이게 말이 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다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살던 대학 시절 친구 부부였다. 미국 생활 7~8년 만에 남편은 연구교수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백인우월주의자 면모가 가득한 대통령의 출현을 실제적 위협으로 느끼는 듯했다.

“외국인 유학생 쿼터도 줄일 거야. 우리 학교에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학생들이 나올지 몰라.”

그런데 몇주 뒤 만난 친구 부부는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했다. “우리 말이야, 집을 사기로 했어. 모기지 최대한 당겨서.”

어떻게든 그 사회에 뿌리를 내려보겠다는 몸부림이었을까. 집 여러 채가 이어 붙은 허름한 2층짜리 연마루집(row house·미국판 서민 주거시설이다)에 살던 친구 부부는 실제로 두어달 뒤 개인주택 단지로 이사했다. 축하차 찾은 새집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푸른 잔디로 뒤덮인 널따란 앞, 뒤뜰. 그 사이에 우뚝 솟은 이층집은 영화 속에서 보던 ‘미국 집’ 그 자체였다.

더욱 놀라운 건 가격. 전에 살던 그 허름한 집 월세가 1천달러(약 120만원)가량이었는데, 그보다 열배는 더 넓고 좋아 보이던 새집은 집값의 80~90%를 대출로 마련했는데도 모기지 원리금 월 상환액이 1천달러대 초반에 불과하더란다. 월세는 모두 사라지는 돈이지만, 모기지는 나중에 집이 남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얘기다. “사실 따로 나가는 돈이 꽤 되더라고. 잔디 관리는 직접 하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결국 업체에 맡겼는데 한달 150달러는 줘야 해. 그리고 세금. 이거 내려면 한달에 300~400달러씩 모아야 되더라고.”

30만달러짜리 집의 한해 재산세가 4천달러가 넘더란다. 한국인으로서는 좀체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그래서였을까? 한두해 전 한국은행을 출입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대표적인 ‘주류 경제학자’로 손꼽히던 조동철 금융통화위원에게 불쑥 물었다. 미국에서 살던 시절 세금 관련 경험은 없는지. “아이고, 말도 마. (교수로 일하던) 텍사스에서 집값의 1점 몇%가 세금으로 나오는데, 그거 내느라 어찌나 고생했던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직접 비교엔 무리가 있겠지만, 땅덩이가 넓은 미국은 지역별 부동산 가격 편차가 한국 이상으로 크다. 전세계의 경제 수도 격인 뉴욕 맨해튼 집값은 일반인은 꿈도 못 꿔볼 수준이지만, 내가 살던 노스캐롤라이나 주민 가운데 뉴욕 집값에 손톱만큼의 관심이라도 가진 이는 없었다. 비싼 만큼 세금도 많이 내고 살 텐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지난 주말(25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는 집주인 1천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사유재산 보호하라” “징벌 세금 못 내겠다”란 구호를 외쳤단다. ‘집주인도 국민이다’ 어깨띠를 매고 촛불까지 들고 나섰다나.

사실 나 또한 자가 거주자로서, 세금 올리는 게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부자들의 천국’이라는 미국에 비춰봐도, 한국의 보유세는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재산에 대한 과세는 더 강화돼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더 많긴 하다.

“1주택자도 세금폭탄 불보듯”(조선), “실거주 1주택자인데 세금폭탄”…강남·용산 주민 항의 봇물”(중앙), “소득 없는데 재산세 껑충…은퇴자 “집 한채 있는 게 죄인가”(동아).

말로는 소시민을 내세우면서도 불로소득 환수·최소화 정책을 우롱하고 정부를 을러대기 바쁜 이들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다. 평소엔 그렇게 숭앙해 마지않는 미국이건만, 왜 부동산 문제를 얘기할 때는 절대 언급하지 않는지?

옛 현인들은 말했다. 복잡한 일일수록 해법은 간단하다고.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이다. 부동산인들 다를 까닭이 있을까. 제발 미국만큼만이라도 했으면.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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