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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성직자들의 성폭력, 왜 못 막는가

등록 2020-07-30 17:32수정 2020-07-31 10:54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개신교에도 ‘헌법’이 있다. 대한기독교감리회의 경우엔 ‘교리와 장정’이라고 하는데, 여기엔 종교인이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범죄와 과오를 제시하는 ‘범과’(犯過)라는 항목이 있다. 예상하듯이 ‘음주, 흡연, 마약법 위반, 도박’이 명시되어 있고 ‘교회 재판을 받기 전에 교인 간 법적 소송을 제기하거나, 교인의 처벌을 목적으로 국가 기관에 진정, 민원 등을 제기하였을 때’나 ‘교회를 모함하거나 악선전하였을 때’ 등 여러 사항이 꼼꼼하게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 가지는 없다. ‘성직자가 성폭력을 저질렀을 때’ 처벌하겠다는 조항이 없다.

지난 5월12일,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에서 감리교의 스타 목사로 불리는 전아무개 목사가 2006년 대전의 한 교회 목사로 있으면서 저지른 성폭력 의혹과 서울 대형 교회 담임 목사 시절의 교회 공금 횡령 의혹을 다루었다. 전 목사 쪽은 성폭력의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 것일 뿐이다. 목사의 억울함을 풀려면 교단에서 제대로 된 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철저하게 조사를 하면 된다. 피해자의 수만 38명에 이르는 성폭력 의혹을 받고도 아무런 조사도 없이 교단 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방송이 나간 뒤인 7월21일 전 목사 관련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무산되었다. 목사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토론장을 점거하고 몸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는 ‘성직자들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고 성윤리 의식의 고취를 위한 조치를 강화하라’고 요구하려 했었다. 그런데 이런 최소한의 상식조차 교회 내에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은 비단 감리교단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익산의 예장통합 소속 한 교회의 60대 목사도 지난 4월 성폭력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나 그가 신청한 사직은 징계 절차 없이 처리되었다. 교단 관계자는 가해 목사가 나이도 있고 현실적으로 다시 목회하기도 어려워 면직이나 다를 바 없어서 조사나 징계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래 교회법상으로는 교역자가 일반 법정에서 징역형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재판위원회에 기소하게 되어 있지만, 이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성폭력을 저질러서 실형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목사 자격을 유지할 수 있고, 계속 목회 활동도 할 수 있다.

피디수첩은 전 목사가 퇴직을 하기도 전에 이미 16억원에 이르는 퇴직금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종교인 과세 적용을 받지 않으려고 사전에 지급받은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윤리인가. 작금의 상황이 이러함에도 7월28일엔 경악스러운 성명서 하나가 감리교 내에서 나왔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감리교단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교회 재판에 회부한 상태다. ‘동성애대책위원회’ 명의로 나온 성명서는 “교회가 사회에 자정능력을 제공하기 위해” 감리교회가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한 이동환 목사를 출교하고,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차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어서 지지를 철회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곤 이동환 목사의 행동을 반기독교적이라고 규정하며 “이것은 목사 가운을 입고 엔(n)번방이나 음란물 제작 촬영 현장으로 달려가 축도한 행위에 준한다. 이와 같은 범죄 행위를 멈추라”고까지 말했다. 뻔뻔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성착취와 성학대 범죄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축복식을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동안 성폭력을 보고도 못 본 척, 사실관계를 조사할 의지조차 없이 묵인한 건 어디였는가. 무엇이 범죄이고, 어떤 폭력을 근절해야 하는지 구분할 능력이 없는 교회가 한국 사회가 타락했다며 자신들이 사회에 자정능력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개탄스럽다. 한국 개신교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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