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30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당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8개월 만에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난 뒤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유일한 생존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의 원고들, 즉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리인입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의 유일한 생존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를 최근 뵙고 왔습니다. 일본도 그렇겠지만, 한국에서도 최근 일본제철 자산에 대한 압류결정문 관련해서 연일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압류결정문에 기재된 채권자 1번이 ‘이춘식’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서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떠실까 걱정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걱정도 있으셨지만, 100살에 가까운 자신에 대한 걱정이 더 크셨습니다. 오랜 소송 끝에 승소 판결을 받으셨음에도 2년이 다 되도록 아무런 변화도 없었기에 초조해하십니다. 늦어져서 죄송하다고, 조금만 더 건강히 기다려달라 부탁드리고 나서 질문을 하나 드렸습니다. “일본제철이 할아버지께 와서 사과하면 어떠실 거 같으세요?”
“보따리도 가지고 와야지. 보따리 가지고 와서 사과하면, 고맙다, 수고했다 하겠지.” 보따리는 할아버지께서 배상금을 표현하시는 말입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맙다’라는 마음과 표현에 대해 다시 여쭈었습니다. “내가 고생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다면 고맙지. 월급이 아니라 노예값인데, 그 노예값을 지금이라도 들고 온다면 고맙지.”
‘강제동원’, ‘강제징용’, ‘징용공’ 등의 용어가 쓰이지만, 본질은 노예였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극으로 치달아가던 1940년대, 전쟁물자 공급을 위해 조선의 젊은이들을 군수공장에서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한국 법원이 아니라 일본 법원이 인정한, 1940년대 일본제철 속 조선인들의 삶입니다. “기상에서 취침에 이르기까지 군대적 규율하에 있었으며, 개인적인 행동은 일체 인정되지 않았고 취로로부터의 이탈은 엄금되어 도망으로 간주된 경우에는 생명과 연관된 혹독한 제재를 받았다. (…) 급료액은 명시되지 않았으며 또한 통장 같은 것은 제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예금하도록 하였고 매우 적은 금액밖에 주지 않았다.”(오사카지방재판소 2001. 3. 27. 선고 평성9년ワ 제13134호 사건)
임금을 받기는커녕, 일을 그만둘 수도 도망칠 수 없는 노예의 공간이 바로 일본의 제철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일했던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노예값’을 청구했고, 오랜 시간을 통해 결국 소송에서 이겼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법률가들 도움을 받아 13년을 소송했지만, 결국 패소한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 뒤에 숨어 판결이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후 발생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많은 갈등은 대표이사께서 더 잘 알고 있으실 것입니다. ‘현금화를 둘러싼 갈등’으로 흔히 묘사되지만, 피해자들이 느끼기에는 ‘노예값’의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이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제철이 판결을 이행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고,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하는 일본의 입장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일본제철을 포함한 강제동원 사건 피고 기업들이 피해자들과 접촉하고 작은 협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대표이사님, 지금의 일본제철을 만든 시간 속에 조선인들의 강제노동이 존재합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제철의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철강사 순위 3~4위를 다투는 세계적 기업이라는 위상을 볼 때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한 1965년 청구권협정 그 어디에도, 사실 인정과 사과의 의사표시를 제한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과를 기다리는 생존 피해자가 몇 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일본제철은 사과의 대상조차 잃게 됩니다.
먼저 사과해주십시오. 결국 이 말씀을 드리려고 이 글을 썼습니다. 100살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당신의 젊은 날 고통을 잊지 않고 있다고 진심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사과’만으로 판결 이행이 완료되었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증폭되는 갈등 속에서, 일본제철 대표이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사과’라는 행위 이후, 우리는 분명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재성 ㅣ 변호사·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