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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람_칼럼 읽는 남자] 턱없이 작은 네덜란드의 수도가 셋 / 임인택

등록 2020-08-05 18:34수정 2020-08-20 14:07

임인택|여론팀장

직설적이고 실용적이기로 ‘악명’이 높은 네덜란드에서 몇 차례 들은 농담. “돈은 로테르담이 벌고, 헤이그가 용처를 결정하며, 암스테르담이 쓴다.” 처음 듣는 이들은 이렇게 물을 만도 하겠다. ‘아니 뭔 나라에 수도가 셋이나 돼, 히딩크 나라가 그리 커?’

명실공히 수도 암스테르담, 행정수도 헤이그, 그리고 이른바 경제수도 로테르담. 그 도시들의 특색조차 각기 올돌하여 그럴 법했다. 풍경과 분위기는 물론이요 심지어 세 도시들의 자전거 주행속도도 저마다의 사회환경을 반영하여 다르다 느낄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 농담엔 풍자도 있다. 제2도시라는 로테르담 시민들의 억울함이 실렸다. 유럽의 대표적 항구도시는 같은 이유로 나치 독일에 의해 도심이 궤멸된 상흔을 전후 극복해내며 유럽의 물류 중심지가 되었으니, 무역국가 네덜란드의 경제적 엔진은 로테르담이되 그 와중에 부침하는 업태나 시설이 드리우는 도시의 그늘은 저만의 몫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세 도시를 주어 삼은 저 수사는 다채로운 도시의 조합(마뜩잖지만 “경쟁력”이라고도 해본다)으로 완성되는 ‘국가’ 네덜란드의 특성을 집약하고 각 도시인들의 긍지를 응축해낸 것 같다. 로테르담 시민에게도 마찬가지다. 의아한 건 사실 네덜란드가, 균형발전 요량이면 차라리 국회를 새만금으로 옮겨라 지화자 타령을 해주신 서현 서울대 교수의 말(<중앙일보> 칼럼)마따나 “턱없이 작다”는 한국의 고작 강원도 2개만 하다는 점이다. 기차를 타고 경제수도에서 전통수도로 가자면 1시간이 좀 넘고, 전통수도에서 행정수도로 가자면 30분이 좀 넘는다. 낙농국가라는 이 나라의 닭과 소는 대체 어디 있는지 막막하면 행정수도에서 경제수도를 향해 자전거를 탈 법한데, 그조차 1~2시간이면 도시를 경계짓고 완충하는 녹야를 즐기며 가닿게 된다. 한편으로 이 나라의 세계적 농업대학은 동쪽 독일 접경 가까운 바헤닝언에 있고, 레이던대, 델프트공대, 에인트호번공대처럼 또 다른 도시마다의 거점대학들이 존재를 뽐낸다. 우리가 알 만한 반 고흐, 히딩크, 페르메이르(<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 헤라르트 필립스(필립스 창립자), 아니 그 전설의 하멜조차 고향이나 본거지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인 이가 없다.

2018~19년 1년여간 대학원에서 도시학을 공부하며 그 나라에 머물렀을 때의 덜 익은 소회를 추리자니 이렇다. 어디서든 마찬가지로 가기 전 환상이 환희와 환멸로 분열된 사례들은 종종 더 얘기해볼 수 있을 텐데, 저 수사만큼 네덜란드의 힘, 즉 ‘다양한 도시(인)의 다채로운 존엄’을 관통하는 말은 없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정치·행정·경제·문화·산업·언론·대학·교육·학원·관광·소비·욕망·열정·꿈·성공·엘리트·부동산·투기·노동·출근·야근·범죄·차별·좌절·분노·죽음의 수도인 서울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세 수도 간 거리쯤 될, 가령 서울과 인천·수원은 “서울”과 “서울 밖”으로 환치될 뿐이고 이때 경계는 부동산 값과 대학진학률 말고는 없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일 거다. 다툴 수 없는 사실은, 서울만 한 종주도시(인구가 제2도시의 2배 이상인 제1도시)는 선진국에 없고 종주도시의 문제 연구는 넘치며, 이미 많은 한국인들은 삶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모델이 온전히 우리 것일 수 없듯, 저개발국·개도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종주도시 문제로 아예 수도를 옮겨버린 브라질(1960년대)이나 근래의 파키스탄, 나이지리아식도 우리의 결과일 리가 없다.

지난 5월부터 21대 국회에 바란다는 전문가와 시민 투고가 적잖았다. 충북대 류기철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것이 통렬했는데 헌재의 “관습헌법” 운운한 “엉터리” 위헌 결정에 맞서 새 국회가 행정수도를 완성하란 요지였다. 류 교수는 “수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없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수도 이전을 하기 위해서 개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수도 이전을 반대하기 위해서 수도 이전을 금지하는 규정을 추가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도 짚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성남 수정구)가 행정수도를 화두로 꺼내기 보름 전 접수된 글이다.

<한겨레> 칼럼이 때로 국회보다 빠르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지역균형은 언감생심, 일단 ‘서울 말고’의 시각과 태도가 왜 아직 이다지도 ‘턱이 없이’ 부족한지 까닭을 묻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혹 “모든 국민은 평등한 환경에서 평등하게 대우받는다”라는 네덜란드 헌법 1조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1조의 차이 때문일까. 그럴 리가, 아니 그럴 수도. “관습”대로라면 서울 도성 밖 백성이 감히 이 나라 ‘주인’일 수 있겠는가.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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