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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헌재는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재심하라 / 이민원

등록 2020-08-06 18:30수정 2020-08-07 02:08

이민원 ㅣ 광주대 교수·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2004년 청와대와 국회를 서울에 존치시킨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세종시와 서울 사이에 심각한 행정력의 낭비, 경제적 비효율을 가져왔다. 이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만드는 것이 온전한 방법이겠으나 위헌 결정의 벽에 부닥쳐 고속도로 건설 혹은 고속철도(KTX) 세종역 설치 등으로 세종시와 서울의 접근성을 개선한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헌정 질서의 문란 또한 위헌 결정의 업보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관습헌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성문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교육받고 자랐다. 그 존재 자체를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인지할 수 없는 관습헌법을 느닷없이 들고나와 위헌 판시를 내린 것은 헌정 질서를 장난스럽게 어지럽힌 것이다.

당시 헌재는 이 소송을 각하했어야 한다. 그 근거를 도저히 못 찾겠으니 관습헌법을 들이댄 것 아닌가. 수도에 청와대와 국회 등이 있어야 한다는 근거는 세계의 수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 국가에 여러 개의 수도가 있는 나라, 주요 국가기관이 여러 도시에 분산되어 있는 나라, 헌법상의 수도와는 다른 도시에 주요 정부기관이 있는 나라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헌재는 행정수도 위헌 소송을 마땅히 각하했어야 하며, 위헌 결정으로 청와대와 국회 이전 등을 제한한 것은 월권행위다.

따라서 헌재는 지난날 잘못 내린 행정수도 위헌 결정으로 대한민국에 발생시킨 비효율과 헌정 질서의 문란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바로잡을까?

헌재가 직권으로 행정수도 위헌 소송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 직권재심은 우리의 법체계에서 생소하지 않다. 감사원은 직권재심의 조항을 만들어 판정이 위법 또는 부당함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이를 직권으로 재심의할 길을 열어두었다. 또한 검찰도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과거사 피해자 487명에 대해 직권으로 스스로 재심을 청구하여 바로잡은 적이 있다. 검찰이 신뢰 회복을 위한 자구노력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사례다.

헌재도 이런 사례를 참조하여 직권재심을 스스로 청구하고 오로지 성문헌법에 의존해서만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 한 나라의 수도 위치는 헌법의 소관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시해야 한다.

또한 헌재가 잘못 인용하여 굴레에 빠진 관습헌법에서도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관습이 성문헌법을 억압할 수는 없다. 관습은 오로지 성문헌법을 보완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헌재는 직권재심을 통하여 관습헌법으로 성문헌법을 억압할 수 없음을 밝혀 대한민국의 법체계를 정상화시켜 놓기 바란다.

만일 관습헌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 새롭게 형성된 관습을 활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세종시는 행정수도로서의 이미지를 16년 동안 국민에게 각인시켜왔다. 중앙부처의 대부분이 이전해 있고, 대통령 집무실 및 국회 분원 설치 등이 논의되는 단계에까지 왔다.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는 비용 때문에 행정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리얼미터 조사에 의하면 찬성 비율이 54%다. 이 정도면 이미 세종시가 행정수도라는 관습이 새롭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헌재가 관습헌법을 통해서도 세종시가 행정수도라는 판시를 할 근거는 충분하다.

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매진해온 시민운동 세력이 있다. 그들이 재심청구에 나서기 전에 헌재가 스스로 결자해지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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