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혜 ㅣ 시인
프로야구를 즐겨 본다. 특정 구단에 집념에 가까운 애정을 쏟고 있다. 스포츠 팬이 된다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그날 나의 바이오리듬이나 업무적인 성과와 무관하게 오직 게임의 승패에 따라 기분이 천상계로 승천할 수도, 마계로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상황이 있다. 동료의 실책에 의해, 아니면 직전에 맞은 홈런 때문에, 혹은 뚜렷한 이유 없이도 우리 팀 투수가 눈에 띄게 흔들리는 것이다. 그의 안색은 점차 잿빛이 되고 응원하는 팬들의 가슴도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베이스마다 주자가 쌓이고 보는 이들의 마음엔 시름이 쌓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때 투수의 고독을 엿본다. 함께 땀 흘려온 동료들의 승리, 간절히 두 손을 모은 팬들의 염원이 오직 나의 어깨에 달려 있다니 상상만 해도 피가 마르고 뼈가 떨린다. 그런 묵직한 상황을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타개해야 한다. 그때의 마운드는 마치 세계에서 가장 외딴 섬 같다.
여기서 종종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이처럼 투수가 흔들릴 때 코치 혹은 포수가 마운드를 방문하곤 하는데 그 후 투수의 컨디션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몇마디도 되지 않는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돌아옴에도 말이다. 응원가를 4절까지 불러줘도 용기가 나지 않을 이 절체절명의 순간, 도대체 무슨 마법의 주문을 건네고 오기에 이런 기적이 가능한 걸까? 나는 그동안 야구 중계와 선수 인터뷰, 경기 분석 프로그램과 관련 기사를 봐오며 몇가지의 경우를 찾아냈다.
우선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말은 “네 공을 누가 쳐?”였다. 나를 발탁해주고, 내 훈련을 지켜봐준 이가 말한다. 너의 재능은 확실하고, 누구도 어찌할 수 없다고. 이런 말을 들었다 상상하니 나까지 가슴에서 마그마 같은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또 어떤 코치는 동료들의 존재를 상기시켜준다고 한다. “야수들 뒀다 뭐 해.” 삶에 있어서 많은 부담은 그를 홀로 감당하려는 데서 온다. 그럴 때 누군가 다가와 널 백업해줄 사람들이 뒤에 잔뜩 버티고 있다고, 고통은 받더라도 고독하진 말라고 말해준다면 그보다 힘이 될 말이 또 있을까. 또 내가 기사에서 읽고 웃었던 말은 이런 것이 있다. “내일 이기면 돼.” 그 말엔 포기보다 ‘어떻게 되어도 너를 탓하지 않겠다’가 느껴져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얼어붙은 투수의 어깨와 골이 깊어진 미간을 풀어준 그 말, 투수가 스스로의 리듬을 되찾게 해준 그 말은 바로 이것이다. “어제저녁에 뭐 먹었어?” 놀랍게도 시시하고 김새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기 직전까지 투수는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쏟아질 비난, 팀원들의 원망, 불명예스러운 기사, 나아가 암담한 미래까지. 그처럼 억겁의 시름에 휩싸인 사람에게 익숙한 얼굴이 다가와 묻는다. 어제저녁에 뭘 먹었냐고. 그는 아마 일순 당황했다가, 잠시 어제를 더듬거리며 순두부찌개나 삼치구이 같은 걸 떠올릴 것이다. 그 몽글몽글하고 짭짤했던 식단을 떠올리며 내가 발 디딘 곳이 세계에서 가장 외딴 섬이 아니고 그저 어제 저녁밥과 오늘 저녁밥 사이 어디쯤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운드 위의 자신으로 돌아온 순간 어깨가 한층 가뿐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살며 별수 없이 긴장할 순간들이 온다. 마음은 늘 마음 같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멋대로 요동쳤다 졸아붙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운드 위의 투수처럼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누가 맞서? 나의 실력을 믿자는 것이다. 등 뒤에 사람 있다! 나의 동료를 믿자는 것이다. 그래도 진정이 안 되면 떠올려본다. 나, 어제저녁에 뭘 먹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