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ㅣ 소설가·영화감독
우울한 요즘이다. ‘코로나 우울’에 더해진 계속된 장마는 여름의 태양마저 빼앗아갔다. 나는 글을 쓰러 주로 도서관을 다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닫혀 있던 동네 도서관이 몇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가 다시 폐쇄됐다. 동네 스타벅스는 열람실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모이는지 이전보다 더욱 붐비고 자리 차지가 쟁탈전 수준이 됐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간 카페에 앉을 자리가 없어 헤매다 보면 세상이 돕지 않는 기분이 들고 지치게 된다.
지난해에 나는 사회에 소속감 없이 혼자 고립되어 있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소설을 써보겠다고 뭔가를 도모할 수 있었다. 열람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얼굴들이 각자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은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도서관이 나를 살렸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서관을 실질적인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여기게 됐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박탈당한 것 같다.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뭔가를 하던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된다. 안전 문제에 공공시설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나, 생명수처럼 여기던 이용자 입장에서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울한 요즘 내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게 있다면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 심리상담이다. ‘마음의 감기’ 같은 표현도 있듯이 우울에 대한 인식이나 신경정신과 치료, 심리상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된 것 같다. 이는 긍정적인 일이나, 한시간에 10만원가량 하는 심리상담은 소득이 높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고맙게도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는 예술인 심리상담 지원을 받고 있다.
정말로 절망에 빠지면 시선이 캄캄해져서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잊게 된다. 몇년 전 나는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끊어진 채 알코올에 의존하고 폭식을 하기도 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의 제목에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많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글도 남겨보고 채팅 앱에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어느 날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에게 용기 내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를 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였던 나는 ‘어차피 통화가 되어도 내 부정적인 에너지만 전염시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세상에 해가 되는 바이러스처럼 여긴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 위험 단계였다는 것은 훗날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3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인 아들의 살인 행위가 결국 자살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통찰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오래 지속되면 자살로 이어지는 위험한 사고 두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나는 혼자야”)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야”)이다.”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담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물론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상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전문가 선생님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상담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검사와 상담을 받은 뒤 상태에 따라 의료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내가 몇년 전 절망에 빠져 힘들었던 시기에 코로나 우울까지 겹쳤더라면 어땠을지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때 이용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혜택을 다른 사람들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