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ㅣ 전국부장
“얘들아, 외할머니야. 인사해야지. ‘할머니 안녕~’ 하고.”
스마트폰 화면에는 흐릿한 눈빛의 장모님과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엄마의 모습이 번갈아 등장했다. 그런 화면을 바라보는 10살 아들과 6살 딸아이. 엄마의 주문대로 ‘안녕하세요’라며 고개를 한번씩 끄덕였지만, 이내 얼굴에는 어색한 기운이 역력했다. 자신들을 알아보지도 못하는데다 갈수록 드문드문 보게 되는 외할머니는 어느덧 생경한 존재가 돼가고 있는 것일까.
장모님이 치매 진단을 받고 5~6년 세월이 흘렀다.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 괴로워하던 가족들도 이젠 나름대로 적응된 듯하다. 논쟁 끝에 장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신 뒤 가족 그 누구도 갈등과 자책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3년쯤 전 영 미덥지 않던 사설 요양시설에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요양센터로 옮겨 모신 뒤로는 맘이 한결 편해졌다. 치매 증세는 심해져 사람을 전혀 몰라보는 것은 물론(사위를 가장 먼저 잊으신 듯했다) 말하고 씹는 것조차 까먹어 죽만 드시게 됐지만 말이다.
장인어른은 그런 장모님을 한두주에 한번씩 꼬박꼬박 찾으셨다. 간식을 먹여주고 손잡고 산책을 시켜주며 (당사자는 알아듣지도 못할)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해주셨다. 자식들이 종종 동행하곤 한 그 방문은 (설령 당사자는 자각하지 못할지언정) 장모님께는 무료하고도 무료한 나날 속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그러던 일상은 코로나19로 완전히 깨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반도에 상륙한 직후인 1월 말 면회금지 방침이 섰다. 노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조처였으리라, 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달랐다. “어쩔 수 없지”라면서도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두주에 한번씩 직원들로부터 ‘잘 지내고 계시다’는 문자가 온다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니 답답하셨던 게다.
반년 만인 지난 7월 면회금지가 풀린(정확히는 비접촉 면회 허용이다) 뒤에야 장인어른은 딸네 집을 찾아 ‘네 장모 잘 있더라’라며 환한 웃음으로 사위와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셨다.
지난 15일 면회 때는 아이들 엄마가 동행했다. 아이들이 쑥스러워하며 화면 속 외할머니에게 꾸벅, 인사한 날이다. 모처럼 엄마를 만나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들 엄마는, 막상 집에 와서는 적잖이 우울해하는 분위기였다. 이유를 물었다.
“영화에서 보던 교도소 면회랑 비슷하더라고. 건물 입구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 로비에서, 두번째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로 연결돼 대화를 나누는 거야. 직원들이 엄마를 모시고 내려와서. 건물 입구에서 유리 너머로만 보다 온 거지. 인원 2명, 시간 15분으로 제한도 엄격하고….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보다 앞서 면회하던 가족들은 갑자기 펑펑 울며 뛰어나가더라고.”
한숨 섞인 이야기를 듣는 도중, 텔레비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라 노인요양시설 면회도 다시 금지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요즘 문제가 되는 그 ‘광화문 집회’가 열린 날이었다.
“내일 가기로 했으면 어쩔 뻔했어. 오늘 다녀온 게 그나마 다행이지.” 우울함은 안도로 바뀌었지만, 씁쓸한 뒤끝은 어쩔 수 없었다.
노약자는 바이러스 공격에 가장 취약한 존재다.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은 기저질환자이거나 노령층이라고도 한다. 그래도 아쉬움 섞인 의문점들은 남는다. 사실상 사회와 단절돼 사는 이들에게 가족들의 비접촉 면회조차 막는 완벽한 차단만이 능사일까? 요양시설 집단감염 사례가 많다지만 이 가운데 가족 비접촉 면회에서 비롯된 감염 사례가 한차례라도 있었나?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학교에서는 비대면 수업을 하는데, 왜 요양시설에서는 비접촉 면회조차 금지할까?
더욱 안타까운 건, 사회와 연결된 그 한가닥 연결망을 일방적으로 차단당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발언해줄 이도 없다. ‘지금은 방역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환자나 가족들이 겪을 외로움이나 우울감도 배려해주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나저나 비대면 면회가 재개되면 사위도 한번은 찾아봬야 할 텐데. 면회 때 인원제한이라도 조금은 풀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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