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장성 진급 밎 보직신고식에서 서욱 육군참모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혁철 ㅣ 논설위원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의 말이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유럽은 1차 대전을 겪으며 ‘전쟁을 군인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1914년 여름 유럽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전쟁이 시작됐다. 유럽 정치 지도자들이 공격적인 군부를 제어하지 못해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일본군은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 진주만을 기습했다. 대본영(침략 전쟁을 수행했던 일본 군국주의 지휘부)은 통제 불능 상태에서 국민을 패전의 잿더미로 몰고 갔다.
세계는 1·2차 대전을 겪으며 폐쇄적이고 권력화된 군부가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민주주의 국가에서 문민통제는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문민통제는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대통령)과 문민관료(국방장관)가 안보 정책을 주도·결정하고, 안보전문가 집단인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문민통제를 거론할 때 미국 사례가 꼽힌다. 미국은 현역 군인이 국방장관을 맡으려면 전역하고 7년이 지나야 한다고 법률로 정했다. 국방부가 국민을 대신해서 군대를 통제하는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장관이 군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국방장관 중 장군 출신은 1950년대 조지 마셜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 2명뿐이다. 미국 국방장관은 거의 정치인, 교수, 기업가 출신이다. 1960년대 7년 동안 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라마는 하버드대 교수, 포드자동차 사장 출신이다.
국내에선 문민통제가 시기상조이거나 비현실적인 주장 취급을 받고 있다. 역대 국방장관을 보면, 거의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사령관 등을 지낸 예비역 장군들이다. 전역하고 몇시간 뒤에 장관에 취임하기도 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2018년 9월21일 오전 10시30분 합참의장 이임식과 전역식을 하고 공군 대장 군복을 벗었다. 정 장관은 전역 3시간30분 뒤에 국방장관에 취임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9월23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육군 대장) 전역 1시간 뒤에 국방장관이 됐다. 이들이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번개 취임’한 것은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는 헌법 87조 4항 때문이었다.
국방장관들을 두고 ‘양복 입은 군인’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자신을 군인으로 착각하고 ‘장관’이 아니라 ‘장군’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심지어 국방부가 군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을 통제하는 ‘국민 통제’ 상황도 벌어졌다. 예를 들면, 박근혜 정부 때 기무사와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세월호 사찰 문건’ 등이 있다.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은 우리 현실에서 요원할 것 같지만 ‘오래된 미래’다. 역대 46명의 국방장관 중 민간인 출신이 이미 5차례 역임했다. 모두 이승만·장면 정부 때였다. 특히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부터 1952년 3월까지 민간인 국방장관 2명(신성모, 이기붕)이 전쟁을 치렀다. 군인 출신들이 계속 국방장관을 맡은 건 5·16 쿠데타 이후다.
참여정부 때는 민간인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려다 북한 핵실험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장군 출신이 익힌 ‘작전지휘’ 수준의 군사 전문성만으로는 최근 미-중 신냉전 격화, 남북관계 부침 등 복잡다단한 안보 환경 속에서 국방장관 역할 수행에 한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군이 특수한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장군 출신이 국방장관을 해야 한다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법무부 장관은 검사가 맡아야 하느냐고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 문민 국방장관 임명을 추진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냈다. 지난주 문 대통령은 서욱 육군참모총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서욱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전임자처럼 군복 차림으로 이임식·전역식을 하고 몇시간 뒤 양복 차림으로 장관 취임식을 할 것이다. 그가 ‘양복 입은 군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