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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문밖엔 무엇이 있을까? / 홍인혜

등록 2020-09-04 17:00수정 2020-09-05 17:13

홍인혜|시인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모 아웃도어 브랜드를 담당한 적이 있다. 광고의 목표는 명확했다. 사람들에게 아웃도어의 매력을 알려서, 더 많은 이가 야외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등산복도 텐트도 더 많이 팔릴 거란 예측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왜냐하면 광고를 맡은 내가 집에 대한 순애로 꽉 찬 인도어형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스케줄 없이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약속이 연거푸 있으면 쉽게 방전되는 배터리의 소유자였다. 산과 들은 모니터로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디지털 시민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웃도어의 미덕을 설파하라니. 벅찬 일이었지만 직업적 사명감에 최선을 다했다. 일주일을 집에서 반, 산에서 반 보내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관련 도서들을 읽기도 했다. 옷장의 절반이 등산복인 사람들―그것은 우리 부모님이었다―을 관찰하기도 하고 소파와 접착된 내 몸을 추슬러 산으로 향하기도 했다.

광고업을 하다 보면 소위 ‘빙의’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면허가 없는 사람이 자동차 광고를 할 때, 비음주인이 소주 광고를 할 때 우리에겐 다른 인격이 필요하다. 나 역시 일생을 문안에 머물기 좋아했건만 마치 아웃도어의 혼이라도 들린 듯 바깥을 탐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바깥은 언제나 유동하고 있었다. 바람도 계절도 꽃도 산도 하루하루가 달랐다. 그리고 인간은 정물이 아닌 동물이었다. 이름에 움직일 동(動)자를 지닌 존재들. 우리는 고여 있기보다 움직이는 것이 어울렸다. 그 배경은 물론 문의 바깥, 즉 아웃도어였다.

생각 끝에 이런 슬로건을 건져 올렸다. ‘세상은 문밖에 있다.’ 절반은 나 자신이, 절반은 내가 빙의한 바깥의 영혼이 쓴 글귀였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모 생활가구 브랜드의 슬로건이 ‘행복은 집에서 삽니다’였다는 사실이다. 상반되는 문구였지만 사실 이 카피를 보고 내 안에 남은 집순이의 혼이 갈채를 보냈다. 그렇지, 행복은 소파 위의 낮잠이고 새로 갈아 끼운 침대보지. 욕조를 채운 거품이고 창가에 살랑거리는 오후의 커튼이지.

‘행복은 집에서 삽니다’와 ‘세상은 문밖에 있다’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선언을 오가며 나는 결국 둘 다 진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런 말들을 덧붙여 보았다. ‘내가 아는’ 행복은 집에서 삽니다. 익숙한 안온함, 변함없는 편안함은 집에 있었다. 집은 언제나 정다운 얼굴로 우리를 안아줄 것이다. ‘내가 몰랐던’ 세상은 문밖에 있다. 모험과 발견, 새로움과 가능성은 문밖에 있었다. 집을 나서야만 볼 수 있는 세상, 있는지도 몰랐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코로나로 인한 칩거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오랜 시절 집에만 있자니 집의 요정을 넘어선 집의 황제인 나조차도 견디기 힘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고통을 삼키고 웅크리는 이유는 모두와 같다. 눈부시게 빛나는 바깥을 지금 참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바다를, 호수를, 공원을, 야구장을 영영 상실하고 ‘그때 좀 더 조심할걸’ 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마스크 아래서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맞이한다. 힘든 시기지만 ‘행복은 집에서 삽니다’를 외치며 새 접시에 복숭아를 담아 보기도 하고, 안락의자를 창가로 옮겨보기도 하며 기운을 짜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세상은 여전히 문밖에 있다고. 세상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오늘을 견디다 보면 언젠가 마주할 것이다. 더 높게 솟은 하늘과 더 푸른 공기, 더 커진 산과 더 반가운 얼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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