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범 l 워싱턴 특파원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는 2017년 북-미 위기 상황과 이후 대화 국면부터 최근의 코로나19 대응에 이르기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의 내막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들 중 하나는 사람을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와, 그의 곁에 남은 자들과 떠난 자들의 극명한 대조다.
트럼프 행정부의 균형추 구실을 하며 ‘어른들의 축’으로 알려진 렉스 틸러슨(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전 국방장관), 존 켈리(전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겪은 고충이 절절하다. 트럼프와 한반도 문제, 이란 핵합의 등에서 마찰을 겪은 틸러슨이 2018년 3월 트럼프에게서 ‘트위트 해고’를 당할 때의 정황은 눈물겨울 정도다. 아프리카 출장 중 느닷없이 해임 가능성을 켈리에게 귀띔받은 틸러슨은 거의 72시간을 잠도 못 잔 채 워싱턴에 복귀해 사무실로 달려갔으나, 트럼프가 몇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올려버린 트위트를 비서한테 전해 들어야 했다.
매티스는 장관에 기용되기 전 면접에서 트럼프 딸 이방카에게 ‘이슬람국가(ISIS) 격퇴 전략 수정에 얼마나 걸리겠냐’는 질문을 받고 답변해야 했다. 매티스의 94살 노모는 “어떻게 트럼프를 위해서 일할 수 있냐”고 했고, 매티스는 “저는 헌법을 위해 일합니다”라고 답했다 한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의사에 반대하던 그는 결국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대하며 2018년 12월 사임했다. 트럼프는 매티스를 칭송할 때 쓰던 별칭 “미친개”를 이후 경멸의 의미로 사용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트럼프 곁을 충직하게 지키는 이들은 아주 다른 대접을 받는다.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트럼프 찬조연설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모두 대표적 트럼프 충성파이며,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군이다. 우드워드의 책을 보면, 펜스는 ‘어떻게 견뎌요?’ 싶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댄 코츠 전 국가정보국장의 부인에게 귀엣말로 “힘들어도 버티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폼페이오는 공직자의 선거 개입 논란을 감수하고 중동 출장 중에도 화상 연설을 통해 트럼프의 외교 성과를 추어올렸다. 헤일리는 지난해 펴낸 책에서 틸러슨과 켈리가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트럼프를 무력화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헤일리는 퇴임할 때 트럼프가 백악관에 초대해 따뜻하게 보내주는 모습을 연출한 거의 유일한 측근이다.
지금 미 정부는 트럼프와 영혼을 함께하는 이들로 채워져 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트럼프 측근 로저 스톤 감형 등으로 “트럼프의 해결사”라는 민주당의 조롱을 듣는다. 트럼프 측근인 보건복지부 대변인(마이클 카푸토)은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좌파의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총알을 장전하라고 페이스북에서 촉구했다. 트럼프가 나서서 음모론 집단 ‘큐어넌’을 “애국하는 사람들”이라고 추어올리니 정부 고위직들도 주저함이 없어졌다. 반대로, 흑인차별 반대 시위 진압에 연방군대를 투입하는 방안 등에 반대했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교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11월3일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미 정부에 ‘어른들의 축’은 영영 사라지고,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의 우위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한-미 동맹이나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떠안을 위험과 기회의 부담도 커질 것이다. 여론조사 데이터가 일제히 ‘조 바이든 승리’를 가리켜도, 현장에서는 “알 수 없다”는 얘기가 계속 들려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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