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의 혜택을 보던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지만, 사설시설을 이용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했다. 거리두기 2단계부터는 일부 사설시설까지 문을 닫는다. 더욱 극소수의 사람만 안전한 공간에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홍성수ㅣ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코로나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코로나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생명, 건강, 복지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고”(유엔 사무총장 정책 보고서), “재난 상황에서 평소 목소리와 힘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더 고통받고, 확인되지 못했던 인권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는 지적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이주자, 고령자, 장애인, 수용자, 여성, 성소수자, 권리취약노동자 등이 코로나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집에 머물러달라”는 방역당국의 진심 어린 호소에 국민들이 화답했고, 그것이 한국의 모범적 방역을 이끌어온 가장 큰 힘이었다. 그런데 집에 머물 수 있는 여건은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이다.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이들의 얘기들 들어보니, ‘방콕’과 ‘집콕’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작은 방에 혼자 갇혀 있는 것은 하루하루가 정말 힘겨운 일이지만, 방이 서너개 되는 아파트에 2주 정도 격리되는 것은 그래도 견딜 만하다고 한다. 주거의 불평등이 재난 상황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재택근무와 재택학습이 일상화되었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노트북이 없거나 와이파이 접속이 어려운 경우에 대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왔다. 그런데 온라인 근무나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실제로 학생 둘이 재택학습을 하고 부부가 모두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이 네명이 학습과 근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집에 사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루아침에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역을 위해서 이동과 만남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결국 공공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조기에 종식될 거로 전망하는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최소한 1~2년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일상생활을 멈추지 않는다면, 각각의 시민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공부할 환경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달에 한두번이라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설, 일주일에 한두번이라도 운동할 수 있는 공간, 하루에 몇시간이라도 일과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공시설을 선제적으로 폐쇄해왔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비상조치였고 효과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조치라고 할 수는 없다. 공공 도서관이나 공공 미술관은 문을 닫았지만 사설 도서관이나 사설 미술관은 문을 열었다. 공공 체육시설은 문을 닫았지만 사설 체육시설은 문을 열었다. 초중고와 대학은 문을 닫았지만 사설 학원은 문을 열었다. 공공시설의 혜택을 보던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지만, 사설시설을 이용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했다. 거리두기 2단계부터는 일부 사설시설까지 문을 닫는다. 더욱 극소수의 사람만 안전한 공간에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불평등을 완화해왔던 공공영역이 붕괴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제한적으로나마 공공시설의 문을 열어야 한다. 공공시설들은 철저한 방역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제한적이나마 대중의 이용을 허용할 수 있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넉넉하다. 충분한 좌석 간 거리를 두고 운영되는 국립 공연장, 1분마다 한명씩 순차적으로 입장시키는 시립 미술관, 가림막을 설치하고 넉넉하게 자리를 배치한 구립 도서관을 상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방역 설비를 충분히 갖춘 채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잘 훈련된 방역 요원들을 배치할 수 있는 것도 공공시설에서는 가능하다. 방역조치하에 제한적으로 개방된 공공시설이 지하철, 버스, 음식점, 카페, 술집보다 더 위험할 리는 없다. 공공시설이 문을 닫는다고 사람들이 무조건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충분한 거리가 유지되려면, 사람들이 공공시설에 적당히 분산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머물 일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어디서 공부하란 말이냐?” “재택근무를 하려고 해도 일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다시 한번 ‘공공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