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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2012년 정치인 문재인이 주목한 ‘공평과 정의’

등록 2020-09-23 17:18수정 2020-09-24 02:10

8년 전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에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꼭 넣으라고 했을 때 정치인 문재인은 어떤 평등과 정의, 공정을 염두에 두었던 걸까. 지금 대통령과 청년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는지, 차이가 있다면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힐지, 청년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때론 설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방탄소년단이 ‘오기와 열정’을 말하고 대통령이 ‘공정’을 37차례나 언급한 제1회 청년의날 행사는 기대만큼의 좋은 평가를 받진 못하는 듯싶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가시 돋친 비난은 그렇다 쳐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심장에 와닿지 않고 조금 공허하다”고 평한 건 아프게 다가온다. 행사를 준비한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2039년 같은 행사를 진행할 ‘미래의 연출자’에게 편지까지 쓰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20년 후를 신경쓸 만큼 지금의 현실은 간단치가 않다.

그래도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공정은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는 문재인 대통령 연설이 진심이라고 나는 믿는다. 공정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기 훨씬 전부터 ‘공평과 정의’를 말했던 정치인 문재인의 태도에서 그걸 읽을 수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구절이다. 이젠 너무 유명해져 날카로운 정쟁의 소재로 인용되는 이 문장을 정치인 문재인이 처음 쓴 건, 8년 전인 2012년의 일이다. 그해 9월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문재인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사람들이 함께 기회를 가지는 나라, 상식이 통하고 권한과 책임이 비례하는 사회, 힘없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힘있는 사람에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사회, 출마선언 때 시민들이 제게 주셨던 ‘공평’과 ‘정의’에 대한 요구들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공평’과 ‘정의’가 국정운영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연설문을 쓴 이는 윤태영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초안엔 이 문장이 없었다고 한다. 윤 전 수석이 연설문 초안을 문재인 후보에게 보내자 문 후보 쪽에서 “대통령이 되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라는 국정운영 원칙을 바로세우겠다”는 부분을 추가해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표현이 조금 바뀌었을 뿐 핵심 콘셉트는 그 무렵 정치를 막 시작한 문재인의 생각에서 나왔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은 물론이고 최순실·정유라의 국정농단·특혜 사건이 드러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문 대통령의 ‘공정’ 연설을 야당에서 주장하듯이 ‘거짓과 위선’ 또는 ‘유체이탈’로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궁금한 건 바로 그 지점부터다. 8년 전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에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꼭 넣으라고 했을 때 정치인 문재인은 어떤 평등과 정의, 공정을 염두에 두었던 걸까. 그가 국정운영의 근본으로 삼겠다던 ‘공평과 정의’는 지금 청년들이 실망하고 분노하는 ‘공정’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며칠 전 청년의날 연설을 보면, 그 변화와 차이에 관한 한줄기 시사점을 엿볼 수는 있다. 문 대통령은 “때로는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초래하기도 했다”면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차별 해소가 한편으론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부분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했던 공평과 정의가 청년들의 공정 요구와 결을 달리한다고 느끼는 듯싶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직접 청년들을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고, 이런 걸 설명하지는 않는 걸까.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의 요구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대통령과 청년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는지, 차이가 있다면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때론 설득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어느 정치인보다 먼저 ‘공평과 정의’의 가치에 주목하고 국정운영 근본으로 삼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실제 국정운영 과정에선 이를 위한 직접 소통에 인색한 것처럼 비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임기 초반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진정성 있는 태도와 공감 어린 자세에서 나왔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취임 직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5·18 유족을 가만히 껴안아주던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광주의 비극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첫번째 청년의날에 청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위로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던 건 왜인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 탓에 타운홀 미팅이나 호프집 만남은 어려워도, 언택트 방식으로 얼마든지 국민과 직접 만날 길은 열려 있기에 그렇다.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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