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권리 침해는 개선되지 않고 내부는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에 대해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종속되는 검찰보다는 국회가 관여하는 공수처가 그래도 낫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살아있는 권력에 완벽하게 종속되는 검찰, 살아있는 권력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공수처를 보며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김용태
금태섭 ㅣ 정치인
김용태 전 의원님, 즐거운 추석 보내셨기 바랍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검찰개혁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얘기했던 생각을 정리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부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저는 진보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도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출되지 않은 검찰이 나서서 선거에 패배한 진영을 ‘청산’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닙니다. 저 자신도 검찰에 10년 넘게 몸담았습니다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예외 없이 검찰을 동원해서 과거 정권에서 임명한 고위 공직자나 공기업 임원들을 물갈이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관행적으로 인정되던 소액의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들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해명이 잘 되지 않는 금액을 다 합쳐서 횡령으로 기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당사자는 순식간에 부도덕한 인사로 몰릴 위기에 놓입니다. 그러나 수사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말은 안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표를 내라는 것이죠. 그렇게 임기가 남은 공직자들을 쫓아내고 나면 수사 중인 사건은 불기소로 종결되거나 벌금형으로 간단히 끝납니다. 위법한 수사는 아니라도 부당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검찰권의 남용이죠. 꼭 그런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말씀하신 대로 한국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별건수사’ 관행은 당연히 고쳐야 할 폐해입니다.
김 전 의원님께서는 개혁 방안으로 ‘검찰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제시하셨습니다. 반면 ‘민주적 통제를 가장한 정치권력에의 종속’은 안 될 일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막강한 권력기관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바르게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선진국들이 대한민국 검찰과 같이 효율적이고 힘센 사정기관을 두지 않는 이유는, 정권이 그런 조직을 중립적으로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검찰개혁이 주요 공약으로 등장합니다. 혹시 선진국에서 그런 경우를 보신 일이 있나요? 미국 대선 후보들의 방송 토론에서 검찰개혁은 논의 주제도 아닙니다. 다른 주요국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여기에 올바른 검찰개혁의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 검찰은 대한민국 검찰과 비교할 수 없이 힘이 작습니다. 권한도 적고 조직도 소규모입니다. 정치에 영향을 미칠래야 그럴 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집권 세력도 검찰을 활용할 유혹을 느끼지 않습니다. 애초에 ‘통제 필요성’ 자체가 없는 겁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검찰은 어떻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그야말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전 정권을 단죄하는 것은 물론, 학자들이 쓴 줄기세포 논문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인지’도 검찰이 따집니다. 심지어 천경자 화백이 그렸다는 ‘미인도’가 진품인지 여부도 검찰이 판단합니다. 이렇게 힘과 영향력이 있다 보니 정권이 검찰을 이용하고 싶은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검찰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검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부가 초기에 전 정권의 박해를 받았던 윤석열, 한동훈 검사 등을 ‘정의의 검사’로 치켜세우면서 검찰 특수부를 유지하려다가 자기모순에 빠진 것도 그런 환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검찰보다 훨씬 더 힘이 센 공수처를 만들어서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검찰의 권한 자체를 대폭 축소해서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게 해야 검찰개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힘 있는 기관을 그대로 둔 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애초에 통제할 필요가 없도록 바꿔야 합니다. 그게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 검찰의 모습입니다.
자, 그럼 저도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기본소득에 관한 얘기입니다. 기본소득은 원래 ‘보수의 복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복지 혜택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한 후 그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한다는 제도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애초의 모델과 다른 변형된 형태도 제안되고 있습니다. 진보 쪽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시도하고, 국민의힘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장 담론이 벽에 부딪히고 새로운 먹거리가 생기더라도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따라서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논의가 활발합니다. 여기에 대한 김 전 의원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앞서 얘기한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저는 정작 보수와 진보가 고개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