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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개혁’ 깔딱고개 넘는 길에 웬 헛발질들인가

등록 2020-10-07 17:01수정 2020-10-27 11:28

야당이 추천위원을 천거한 뒤에도 비토권을 행사하면 공수처 출범 자체가 무한정 지체될 수 있다. 현행법대로면 여론 지지 없이는 공수처 가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 ‘촛불’ 소명 잊고 무사안일에 빠진 ‘살찐 권력자’의 모습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 야당·언론의 공격은 집요한데 주무 장관부터 헛발질해서 되겠나.

이제 마지막 한 고개 남았다. 그런데 깔딱고개다. 다 온 것 같지만 넘기가 쉽지 않다. 민주화 이후 오랫동안 국민적 숙원이던 ‘검찰 개혁’ 가는 길이다. 역대 민주 정부가 추진했으나 한번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다가 1천만 촛불시민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우여곡절 끝에 법은 만들어졌지만 가동 단계에서 다시 난항이다. 여론 지지도 예전 같지 않다. <한국방송> 여론조사(9월26∼28일)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여당이 주도해 빨리 출범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야당이 협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46.1%와 41.0%로 팽팽하다.

지난해 보수 언론·야당과 손잡은 ‘윤석열 사단’의 저항이 첫 고비였다. 개혁 ‘전사’로 내보낸 법무장관은 ‘멸문지화’ 당하며 ‘불쏘시개’가 됐다. 정권은 ‘공정’ 화두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학입시제도까지 손봐야 했다. 그러나 과도한 칼질은 부메랑이 됐고, 역풍으로 달아오른 ‘검찰 개혁’ 열기는 결국 국회를 움직였다.

올해 3월 ‘검·언 유착’ 사건은 윤 사단의 뒤집기 시도가 아니었는지 의심된다. 당시 <채널에이> 기자는 회유·협박용 편지까지 보냈고,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는 “나를 팔아” 하면서 오히려 기자를 부추겼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이 절묘했다. “그러다 한 건 걸리면” 총선판을 뒤집을 수 있겠다는 욕심도 냈을 법하다. 그런 정도가 아니고서야 법 아는 검사가 ‘불법’ 모험을 감행할 리 있을까. 실제 기자가 계획했던 시점에, 여권 대선주자로까지 꼽혀온 유력 인사를 겨냥한 시도가 성공했다면 총선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6일 이동재 전 기자의 형사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는 “편지 내용대로 수사가 흘러가 압박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또 다른 ‘유착’의 정황이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최측근 검사의 휴대폰은 여전히 포렌식 중이다. 비밀번호가 풀려 문자가 쏟아지면 사건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를 일이다.

입법 이후 후속 개혁의 중책을 맡은 후임 법무장관은 인사권을 활용했다. “수사권은 검찰에 있으나 인사권은 장관과 대통령에게 있다”는 대통령의 선언 이후 ‘윤석열 사단’을 완전 해체했다. 특수통은 기가 꺾였다. 그러나 여론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충견 검찰’ 프레임 앞에 ‘검찰 개혁’ 명분은 퇴색했다.

최근 터진 아들 문제는 장관 스스로 일을 키웠다. 사건은 복잡하지 않다. 아들이 실제로 무릎 수술을 했고 실밥 푼 게 두번째 병가 끝나기 이틀 전이었다. 아무리 군인이라도 인권이 있으니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게 맞다. 그 과정에서 보좌관을 동원한 게 문제였다. 당대표를 대신한 전화였으니 특혜 내지 외압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그래도 불법으로 단죄받을 수준은 아니었으니 초기부터 보좌관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이렇게 난리 칠 사안이 아니다. 아무리 윤석열 사단과 공조 중이라 해도 보수언론이 침소봉대할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투와 태도가 ‘거짓말’ 프레임을 키웠다. 사과도 타이밍을 놓쳤다.

거대 여당 탄생 이후 여권에 대한 언론의 감시·견제 기준이 쑥 높아졌다. 정치 일정과 언론 지형을 고려하면 보수언론의 공격적인 보도는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그런데도 광역단체장들의 성범죄부터 청와대 인사들의 다주택 소동, 이상직·김홍걸 의원에다 장관 가족들 문제까지 파문이 줄을 이었다. ‘촛불’ 소명 잊고 무사안일에 빠진 ‘살찐 권력자’의 모습으로 비친다.

다가올 선거 일정을 앞두고 권토중래를 꿈꾸는 보수 야당·언론의 공격은 집요한데 방어도 해명도 어설프다.

올해 초 발효된 검찰 개혁법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가 두 축이다. 공수처를 통해 수사기관 간 견제 체제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공수처가 불발되면 검찰 개혁도 물 건너간다. 공수처가 출범하려면 일단 야당이 2명의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천거해야 한다. 그 뒤에도 야당 위원이 비토권을 행사하면 가동 자체를 무한정 지연시킬 수 있다. 현행법을 유지하는 한 여론 지지가 없으면 공수처 활동이 사실상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방지하도록 법을 고치려면 더더욱 여론 지지가 필수적이다.

일찍부터 ‘민변 공수처’라며 시비하던 일부 언론은 부처의 ‘수정’ 의견을 ‘반대’로 침소봉대하며 여전히 훼방 중이다. 그래서 마지막 깔딱고개가 더 힘들다. 그 고갯길에서 주무 장관이 헛발질해서야 되겠는가.

김이택 대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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