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가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당 야당이 오랜만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거 같다. … 법으로 저희들이 뜻을 관철시키면 되는 거니까,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든 말든….”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추경호 의원(국민의힘)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출석시킨 자리에서 한 말이다. 앞서 고용진 의원 등 여당 의원들도 잇따라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범위를 내년 4월부터 종목당 주식보유액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정부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추 의원의 말처럼 여야가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정도에서 한참 벗어났다. 2년 전 국회 기재위에서 통과시킨 법안을 시행도 하기 전에 되돌리겠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의원들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시행을 코앞에 앞둔 정책을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취소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그 논리도 합당하지 않다. 첫째로 드는 근거는 주식시장에 혼란이 생겨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관한 최고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들이 과거에도 세금을 회피하고자 기준 완화 직전 해 12월에 순매도를 했지만 기관투자자들이 이 물량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주가폭락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이익 증가 등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둘째는 2023년부터 국내 상장주식·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양도차익에 대해 소액주주와 대주주 구분 없이 과세하되 연간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만큼, 굳이 2년 앞서 대주주 기준 완화를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회가 이미 통과시킨 법까지 뒤집겠다는 마당에 아직 통과도 안 된 방안을 3년 뒤에 그대로 추진한다고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때 가면 또 어떤 이유를 들어 정책을 무력화할지 알 수 없다.
여야 정치인들의 주장은 근거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인 행태로 여겨진다. 세금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민심 이반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이에 민감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야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을 위하는 게 아니다. 이른바 ‘동학개미’들을 의식한 것이라는데, 실제로 이번 대주주 기준 완화는 동학개미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완화했을 때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개미’가 아니라 전체 투자자의 1.5%에 해당하는 ‘주식부자’다. 그 3억원도 전체 보유 주식의 가치가 아니라, 한 종목의 가치를 말한다. 통상 투자자들이 주식을 한 종목만 보유하는 게 아닌 만큼 이들의 보유 주식 가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여야 정치인들의 주장은 ‘주식부자 감세’를 넘어 ‘주식부자 면세’를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논란은 조세형평성이라는 더 큰 그림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애초 우리나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제는 왜곡돼 있었다. 주식시장이 발달한 다른 주요국들은 모두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물렸으나 우리는 자본시장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상장주식 양도차익에는 과세를 하지 않았다. 근로소득자들의 ‘유리지갑’에서는 매달 세금을 떼가는 것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런 지적에 2000년 처음으로 종목당 100억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에게 과세를 시작한 이래 단계적으로 기준을 완화했다. 대주주 기준은 2013년 50억원, 2016년 25억원,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으로 낮춰왔다. 한꺼번에 전면 도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줄이려는 고육책이었다. 무려 20년 동안에 걸친 이런 연착륙 시도를 착륙 마지막 순간에 정치인들이 뒤집으려고 하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가 강력 반발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깔려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재정의 역할이 더 확대돼야 하는 만큼 안정적인 재원 조달도 중요한 과제다. 주식 양도차익 같은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야당은 재정이 무너진다고 하면서, 여당은 재정 확대를 얘기하면서 세금 더 걷는 것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다음주에 열리는 기재위 국감에서는 좀 더 이성적인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박현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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