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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대화 저널리즘’을 위하여

등록 2020-10-25 17:00수정 2020-10-26 02:39

이미 갈등을 증폭시키는 뉴스에 중독된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이런 뉴스를 찾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욕심내지 않고 ‘대화 저널리즘’을 기존 저널리즘의 일부로 활용하면 문제 될 게 없다. 한국도 미국 못지않게 ‘대화 단절’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인바, ‘대화 저널리즘’의 기본 취지는 뉴스 생산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켜 쌍방향성을 구현함으로써 사회적 소통을 활성화해보자는 것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잖은가.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내가 근무하는 뉴잉글랜드의 대학에서는 일부 교수들이 수업을 취소했고, 일부 학생들은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상담을 받고 싶다는 문의가 갑자기 폭증했다.” 미국 철학자 마이클 린치가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에서 2016년 대선 직후 전개된 사회적 풍경에 대해 한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에 충격과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과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에 환호하며 열광한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가능할 리 만무했다.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대화는 불가능했다. 2017년의 한 여론조사에선 “정치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39%였으며, 이 중 절반은 “그래서 가족과 절연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두 개로 쪼개진 미국’ 현상은 트럼프 시대에 처음 나타난 건 아니지만,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소셜 미디어는 당파성을 심화시키는 알고리즘으로 장사를 하는데다, 위기에 몰린 전통 미디어들마저 생존을 위해 그렇게 길들여진 수용자의 비위를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니, 소통은 물 건너가고 만 셈이 되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두 개의 미국’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스페이스십 미디어’는 ‘대화 저널리즘’을 들고나왔다. 이들은 트럼프 지지자와 클린턴 지지자들을 선별해 서로 대화를 나누게 하고 이를 뉴스로 보도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을 선보였다. ‘대화 저널리즘’에선 첨예한 갈등을 빚는 모든 이슈가 다 뉴스거리가 될 수 있다. 참여자들에겐 욕이나 인신공격을 하면 안 된다는 지침이 주어지고, 기자는 대화를 경청하는 동시에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중재한다.

‘대화 저널리즘’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는 높다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뉴스를 환영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지난해 <에스비에스>(SBS)가 개최한 국내 행사에서 강연을 한 스페이스십 미디어 대표 이브 펄먼은 <미디어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항상 성찰하고 서로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버블에 갇혀 있다. 대화하다 보면 정형화된 편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를 분리하는 곳에서 벗어나고 개방성과 공감을 쌓아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이미 갈등을 증폭시키는 뉴스에 중독된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이런 뉴스를 찾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욕심내지 않고 ‘대화 저널리즘’을 기존 저널리즘의 일부로 활용하면 문제 될 게 없다. 한국도 미국 못지않게 ‘대화 단절’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인바, 모든 언론이 적어도 매주 한 꼭지 이상의 ‘대화 저널리즘’ 기사를 게재해보는 건 어떨까. ‘대화 저널리즘’의 기본 취지는 뉴스 생산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켜 쌍방향성을 구현함으로써 사회적 소통을 활성화해보자는 것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런 정도의 ‘대화 저널리즘’은 이미 실천해왔다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일반 독자의 목소리를 선별적으로, 들러리용으로 전하는 데에 치중해온 건 아닌가? 독자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생각을 달리하는 독자들 상호 간 직접 대화는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화는 논쟁이나 토론이 아니다. 상대를 압도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말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다. 왜 상대편이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리석거나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문제에 대해 다 아는 척할 필요도 없고, 내가 옳다고 강변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자세를 잠시 유보하고, “우리도 틀릴 수 있고 너희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

‘대화 저널리즘’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정해진 틀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형편에 맞게 사회 곳곳에 대화가 흘러 넘치게 해보자는 한국형 ‘대화 저널리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1인 저널리즘’의 시대가 만개된 세상에서 ‘대화 저널리즘’은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전 분야가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통 방식이 될 수 있으며 되어야 마땅하다.

익명의 공간에서 늘 악담과 저주를 퍼붓던 사람일지라도 대화의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점잖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대화를 통해 평소 ‘괴물’처럼 생각해왔던 반대편 사람들이 의외로 착하고 선량한 내 이웃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을 가능성이 높다.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은 대화에 굶주린 사람들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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