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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신성 가족’의 두 얼굴, 이탄희와 윤석열

등록 2020-10-28 18:24수정 2020-10-29 10:56

판사 이탄희가 도전했던 법원의 ‘신성가족’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법농단 판사들은 모조리 무죄 받고 속속 재판업무에 복귀했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가족’들의 수호자다. ‘가족’들 주문에 부응해온 결과가 ‘야권’ 대선 후보감 1위다. 이탄희와 윤석열,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신성가족’의 두 얼굴이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판사 시절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판사 시절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한민국에서 뭐라도 하려면 결과 나오고 나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마라. … 법원에서 뭐라도 하려면.”

“저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도 요즘 너무 힘들어….”

2017년 4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를 위해 대법원이 꾸린 진상조사위 위원장실에서 오간 대화다. 이탄희 당시 판사는 위원장인 이인복 전 대법관의 말을 듣고 참담함에 고개를 떨궜다.(<두 얼굴의 법원>)

이 위원장은 조사 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이탄희 판사 관련 언론 보도도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판사의 ‘저항’은 이후 대법원장 구속까지 불러오며 사법사상 초유의 대형 농단 사건으로 비화했다. 그동안 법원행정처가 앞장서 일선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 뒷조사까지 해왔음에도 이에 가담한 판사 그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 전 대법관 말처럼 ‘법원에서 뭐라도’ 하려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판사들과, 그들을 엘리트로 칭송해온 사법부의 민낯은 나중에 검찰의 손을 빌려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판검사 등 법조인 집단에 ‘불멸의 신성가족’이란 이름을 붙였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상부상조의 ‘사법 패밀리’ 구조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라는 통렬한 은유다.

이 판사가 도전했던 ‘신성가족’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법농단에 가담했던 전·현직 판사들은 모조리 무죄를 받고 있다. 현직 판사들은 속속 재판업무에 복귀했다. 한때 일부 여당 의원들이 탄핵을 추진했으나 지금은 이마저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그사이 ‘가족’들은 모두 살아났지만 법원의 신뢰는 추락했다.

법원을 떠나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던 이 판사는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사법농단 사건의 충격은 그에게 마음의 병을 안겼지만 정계입문 출사표도, 지금의 최고 관심사도 여전히 사법개혁이다. “대법원장이 판사 출신 대형로펌 변호사를 불러 그 로펌 사건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은 또 그 로펌으로 몰려간다”며 “이런 구조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출범한 뒤에는 국민들도 다시 사법개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 사법농단 수사로 ‘윤석열 검찰’이 날개를 단 건 아이러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 수사를 이유로 특수부를 3개에서 4개로 늘렸다. 검찰의 권한과 특수수사 규모를 줄이겠다는 검찰개혁 대의에 역주행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들에 이어 직전 대법원장까지 잡아들였지만 전임자들처럼 ‘검찰 가족’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았다. 채널에이 ‘검언 유착’ 사건에선 검찰총장이 몸소 ‘측근 사랑’의 가족애를 선보이기도 했다. 감찰에 제동 걸고, 통상의 절차와 달리 수사심의위까지 소집하며 무리수를 감행했다.

라임 사건에서도 검찰 식구들은 절묘하게 칼날을 피했던 모양이다. 피의자가 편지로 로비 전말을 폭로하고 법무장관이 감찰을 지시한 뒤에야 그 흔적이 드러났다. 서울 강남의 술집에서 천만원대 향응을 받았다는 감찰 결과가 공개됐으나 검찰 가족들은 직전까지 ‘중형 범죄자’ 주장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진위 확인은 거쳐야겠지만 검찰 출신 변호사가 했다는 말은 놀랍다. ‘내가 전직 대통령도 뛰어내리게 했다’. ‘논두렁 시계’ 논란에 “근처에 논두렁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던 선배 검사처럼 이들에겐 그 비극이 여전히 영웅담이었던 걸까.

이런 게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별장에서 속옷 차림에 여성을 끌어안고 춤추는 선배의 선명한 얼굴을 보고도 후배 검사들은 하나같이 모른 체해줬다. 적폐청산 수사가 한창일 때도 전 정권 시절 청와대 수사 상황을 청와대에 속속 보고했다는 검찰 간부는 무사했다. 모두 ‘신성가족’들 뒷담화 자리에선 미담 사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 총장은 이런 ‘가족’들의 수호자다. 그가 충성한다는 ‘조직’은 물론 검찰이다. 총장 취임 뒤 정권에 맞서는 그의 행보 역시 ‘가족’이 주문하는 ‘검찰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결과로 ‘야권’ 대선 후보감 1위에 올랐다. 최근엔 “퇴임 뒤 사회 봉사” 발언으로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 공방의 한복판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개인 윤석열에겐 ‘사회 봉사’일지 몰라도 검찰 조직엔 독이다. 정치인 출신 법무장관과 정치지망생 검찰총장이 맞부딪치면 검찰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신성가족’들은 박수 칠지 몰라도 국민들은 외면할 것이다.

이탄희와 윤석열.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신성가족’의 두 얼굴이다.

김이택 대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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