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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미-중 신냉전과 ‘천하삼분지계’ / 박민희

등록 2020-10-29 16:13수정 2020-10-30 02:40

다음주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변하지 않는 것은 미-중 갈등이 오래도록 치열하게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의 부상을 억눌러야만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에 우위를 보이는 반도체, 금융, 군사력을 활용하고, 동맹국들을 규합해 ‘반중국 동맹’을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계속 신냉전 사고에 기반해 ‘반중국 동맹’을 만들려 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소련과 달리 전세계 경제와 깊숙이 얽혀 있는 중국은 경제를 ‘무기’이자 ‘방패’로 활용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려는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주장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과 많은 기업들이 고수익을 내는 중국과의 거래를 중단하려 하지 않는다. 국내에선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벌써부터 ‘이기는 편에 서야 한다’며, 미국 편을 선택해 중국과 맞서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실적이지 않고, 무책임하다.

안보와 규범에선 ‘미국과 함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미-중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한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전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비슷한 처지다. 미국과 군사협력 관계인 나라는 60여개국, 중국이 1위 교역국인 나라는 110여개국이다. 미국의 가장 주요한 동맹이자 미-일 동맹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일본도, 중국과 관계를 끊으라는 미국의 요구에는 거리를 둔다. 이달 미국이 일본에 ‘아시아판 나토’를 염두에 둔 ‘쿼드 플러스’ 구상, 중국을 배제한 첨단 정보통신 생태계를 만들자는 ‘클린 네트워크’ 전략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한발을 빼며 난색을 표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도전하는 중국의 갈등 속에서 쉽지 않은 선택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들이 일으키는 파도에 덜 흔들리려면, 같은 고민을 하는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끼리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 독일·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자국의 길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 국가와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중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는 ‘제3지대’를 만들려는 외교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 ‘제3지대’ 국가가 늘어나면 신냉전의 긴장도 낮아지고 평화와 안정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제3지대’ 국가들은 미·중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면서도, 강대국의 강압적 행위나 인권 침해, 오만한 외교에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국제규범과 인권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다. 미-중의 패권 경쟁 사이에 완충지대를 형성할 ‘천하삼분지계’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미·중 모두 비핵화와 종전체제의 한반도 정세가 자국에 유리하다고 확신하지 못했고, 일본은 방해 세력이 됐고, 유럽 국가들도 회의적이었다. 미-중 갈등이 악화되면서 중국에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강경론이 높아지고 있다. ‘제3지대’를 통해 한국의 입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넓혀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미·중 협력의 동력도 다시 만들 수 있다.

한-일의 전략적 협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한-일 관계도 새 길을 찾을 수 있다. 30일은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도록 한국 대법원이 판결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한·일 지도자가 정치적 의지를 담아 협상을 해야,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이 실질적 보상을 받을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조건 없이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해야 한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웠지만, 미국에 끌려가면서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원칙이 없는 모호한 외교에 머물렀다. 한국은 외교 목표와 전략을 분명히 세우고 ‘고민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판을 만들어나가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세계 9위(2020년 OECD 전망치)의 경제, 민주적 시스템, 케이팝과 케이방역의 소프트파워를 허비하지 말자. 여전히 명·청 교체기와 구한말의 ‘약소국 조선’의 틀로 외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박민희 ㅣ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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