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손원제 ㅣ 논설위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일선 검사들의 ‘댓글 릴레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여러 매체에 보도된 검사 댓글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전체 검사 수의 15% 가까운 300여개 댓글이 달렸다는데, ‘장관 저격’의 천편일률을 벗어난 내용은 왜 이다지도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무혐의 처분, 성폭력 동영상 속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얼굴을 보고도 눈감아준 수사 등을 거론하며 “검찰의 업보가 너무 많다. 자성이 필요하다”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별도로 올렸다. 하지만 “물타기” 같은 비판적 댓글만 줄줄이 달렸다고 한다. 검찰의 촉수는 왜 늘 조직 바깥으로만 뻗는 걸까?
먼저 경위를 한번 돌아보자. 시작은 지난달 28일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이 검사는 “그 목적과 속내를 감추지 않은 채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이 남발되고 있다”며 추 장관을 비판했다. 이튿날 추 장관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커밍아웃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고 적었다. 이 검사가 동료 검사 협박죄로 체포된 피의자를 상대로 가혹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기사 링크를 함께 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가 ‘장관님의 에스엔에스 게시글에 대하여’라는 글을 내부망에 올렸다. 그리고 이 글에 ‘나도 커밍아웃한다’는 댓글이 300개 가까이 포도송이마냥 달렸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행동은 적절하지 못했다. 장관이 일개 평검사를 대상으로 좌표를 찍는 듯한 인상을 줬으니 가볍기 그지없다. 물론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그런 정도의 의혹을 받는 검사가 한 발언의 의미를 따져보는 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중하고 정교하게 공식적으로 다뤘어야 한다.
더 씁쓸한 건 검사들의 댓글에 드리운 ‘집단 의지’다. 번호를 매겨가며 줄줄이 달린다는 검사들의 댓글에선 ‘너 잘 걸렸다’는 기회 포착의 의기양양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독단, 억압과 공포는 개혁이 아니다.” “권력자의 뜻에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자마자 공권력과 여론이라는 가장 강력한 권력으로 탄압한다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 “내부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민주주의다.” 검사들의 댓글은 검찰개혁의 억압적 성격, 절차적 미비를 공격한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추 장관이 실행하는 검찰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는 논리 구조다. 비약이다.
검사 댓글은 개혁 대상이 된 권력기관 구성원의 전형적 태도를 보여준다. ‘개혁에 정면으로 들이받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부각한다.’ 과정의 일방성과 강압성에 대한 기득권자의 강조와 비판은 대개 개혁 자체에 대한 부정과 저항으로 귀결되기 쉽다. 과정과 방법론의 문제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그렇기 때문에 이 개혁을 개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깔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공권력과 여론이라는 가장 강력한 권력으로 탄압” 같은 댓글이 꼬리로 몸통을 흔들고 싶은 심층의 욕망을 잘 드러낸다고 본다. 그러니까, 울고 싶은 검사들의 뺨을 시원하게 때려준 것이야말로 추 장관의 가장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검사 댓글 모두가 방법론의 결함을 꼬투리 삼아 개혁의 정당성을 원천 부인하려는 강력한 동일체적 의지의 표출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목적만큼 과정 또한 정당해야 한다는 신조를 담은 댓글도 없기야 하겠나? 그러나 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달리고 있을 검사들의 댓글 중 가장 찾아보기 힘든 종류라는 것은 분명하다. 검찰 내부로 드리운 촉수는 티렉스 뼈만큼이나 발견하기 어렵다. ‘김학의’까지 갈 것도 없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윤석열 총장의 거친 발언, 정치적 행보의 문제점을 짚는 기개를 보여준 검사는 희귀하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사들은 ‘검찰 인사는 검찰에게 맡기라’는 말만 집요하게 반복했다. ‘어떤 외부 통제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검사들의 욕망과 세계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을 천공의 성채로 남겨둬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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