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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중국이 미국에게 / 정인환

등록 2020-11-05 18:54수정 2020-11-06 02:40

정인환 ㅣ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선 외국 고유명사를 한자로 음역해 쓴다. 이를테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식 이름은 ‘터랑푸’ 또는 ‘촨푸’다. 중국 누리꾼이 부르는 별명은 따로 있다. ‘촨젠궈’,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중국 때리기로 되레 중국이 깨어났으니 ‘건국’(젠궈)을 도왔다는 조소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바이덩’이라고 읽고 쓴다. 그 또한 누리꾼이 붙인 별명이 있다. ‘중국을 부흥시켰다’(전싱중화)란 말에서 따온 ‘바이전화’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이어갈 것이란 점을 꼬집은 표현으로 들린다. 미 대선을 앞두고 중국 관영매체가 “둘 중 누가 당선되든 중국은 개의치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해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묘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이 거대한 시험을 마주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 이미 각고의 노력 끝에 코로나19 방역에서 중대한 전략적 성과를 거뒀다. 중국의 경제도 안정적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가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던 4일 저녁 8시(현지시각)가 조금 넘은 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제3회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 개막식에서 화상 기조연설을 했다. ‘일방주의’ ‘보호주의’에 대한 비판이 잠시 등장할 뿐, 2500자가 넘는 연설문 어디에서도 ‘미국’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중국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이날 연설에서 강조한 것은 코로나19 방역과 경제회복 두가지다. 그는 “지난 10월20일 현재까지 마스크 1790억장, 방호복 17억3천만장, 진단검사 키트 5억4300만개를 150개 국가와 7개 국제기구에 지원했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거론했다. 자부심이 느껴진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매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집계 결과’를 인용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코로나19가 얼마나 창궐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도한다. 우한 봉쇄 때 인권 운운하더니, ‘생명권’보다 중요한 ‘인권’이 있느냐고 따져 묻는 기분이다.

위기를 뚫고 반등한 경제는 중국의 또 다른 자부심이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의 인구는 14억명에 이르고, 중산층은 4억명을 넘는다. 전세계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향후 10년간 중국의 누적 수입액은 22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공장’은 옛말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크고,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 중국이 2018년 가을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를 시작한 것도 이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서다. 시 주석은 이날 코로나19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세계를 향해 “중국은 협력과 단결을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개방을 전면 확대할 것”이라며 “국내외 시장을 연결해 효율을 높이고, 경제활동에 필요한 자원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강조했다.

“국제사회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기 위해 중국 시장을 세계의 시장, 함께 누리는 시장, 모두의 시장으로 만들겠다.”

미국 대선 결과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대세를 탄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더라도,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 주석은 ‘미국’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4일 저녁 그의 연설을 들으며 ‘혼돈의 땅’ 미국이 겹쳐졌다. 시 주석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향해 일종의 ‘선언문’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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