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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코로나와 바이든, ‘미국 특별주의’의 종언

등록 2020-11-09 16:20수정 2020-11-24 08:38

코로나 대응과 대선 개표 과정에서 드러난 혼란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반세기 넘게 미국이 자랑하고 전파해온 ‘미국 방식’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점이다. “미국은 ‘특별한 나라’이고 미국 방식이 항상 최고라는 ‘미국 특별주의’(American Exceptionalism)가 지도자와 시민들의 눈을 가렸다”는 지적은 그 점에서 정곡을 찌른다.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민주당 지지자들이 전세 낸 이층 버스를 타고 뉴욕 도심을 돌며 자축하고 있다. 버스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리얼티쇼를 진행하면서 유행시킨 '넌 해고야!'(YOU'RE FIRED!)란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민주당 지지자들이 전세 낸 이층 버스를 타고 뉴욕 도심을 돌며 자축하고 있다. 버스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리얼티쇼를 진행하면서 유행시킨 '넌 해고야!'(YOU'RE FIRED!)란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7일(현지시각) 대국민 연설에서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미국이 다시 세계로부터 존경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말은 트럼프 4년간 극심한 대립과 갈등에 지친 미국 안팎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하지만,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믿음을 주진 못한다. 지금의 미국 현실은 바이든의 전통적이고 무난한 연설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확진자(1천만명)와 사망자(24만3천명)가 발생한 나라, 대선 승패를 확정하는 데 1주일 가까이 걸리는 현실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 맞나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코로나 대응과 대선 개표 과정에서 드러난 혼란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반세기 넘게 미국이 자랑하고 전파해온 ‘미국 방식’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점이다. 유럽도 비슷하지만 특히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강력한 방역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에서 뭔가를 배우는 데 무관심했고 더뎠다. 한국·대만·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들이 사스와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웠고 그 뒤 방역시스템을 어떻게 바꿨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국 국제개발처(AID) 국장을 지낸 제러미 코닌다이크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코로나 대응에서) 실패한 주된 요인은 과학이나 의료적 결함이 아니다. 미국은 ‘특별한 나라’이고 미국 방식이 항상 최고라는 ‘미국 특별주의’(American Exceptionalism)가 지도자와 시민들의 눈을 가렸다”고 지적한 건 그 점에서 정곡을 찌른다.

대선 투개표 과정도 비슷하다.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다. 선거가 공정하고 정확하다는 믿음 없이 대중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그런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대통령 당락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개표를 진행하는 데 걸린 시간이 5일이다. 과거 일부 미개발 국가에서 선거 개표에 1주일씩 걸린다는 외신을 접한 적은 있어도, ‘민주주의 교본’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현대 정치에서 개표 지연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짜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상황에서 더딘 개표작업은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지기 쉽다.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친 조지아주의 전자투표기는 지난해 업데이트한 것으로, 6월 예비선거 때 컴퓨터 미작동으로 한차례 혼란을 겪었고 투개표 종사자들이 숙련됐는지도 의문이라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펜실베이니아 67개 카운티 중 8개는 전자투표기 작동 방식이 달라 해킹과 오작동의 위험이 좀더 높다고 한다. 과거엔 관용과 타협, 신뢰와 승복이 어우러져 제도 및 기계의 결함을 극복했고, 이것이 진정한 ‘미국 민주주의의 힘’인 것처럼 칭송했다.

2000년 대선에서 사상 초유의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때, 이걸 조기에 해소한 건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승복이었다. 이번처럼 마지막 한표까지 재검표를 했더라면 앨 고어는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언론이 앞장서 앨 고어를 압박했고, 고어는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결정’을 깨끗이 받아들였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2020년 미국 정치엔, 분열을 막기 위한 양보나 자발적인 승복, 진영을 넘어선 통합의 움직임은 희미해진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개인의 캐릭터가 혼선과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꼭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정치의 양극화와 이로 인한 첨예한 대립은 미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가 직면한 문제다. 초고속인터넷 시대에 주마다, 카운티마다 각기 다른 방식의 아날로그식 개표를 진행하는 건 언제든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케이(K)-방역’만 뛰어난 게 아니라, 아파트 동대표 선거까지 적용되는 한국의 케이-보팅(K-Voting) 시스템도 미국보다는 한 수 위에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세계로부터 다시 존경받는 미국’을 만들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대통령이 의례적인 말로 ‘통합’ ‘자유’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전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올해 일어난 두가지 사건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는 상징적인 신호로 읽힌다. 이제 미국이 세계의 표준이 아니란 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게 절실하다는 점, 이걸 깨달아야 미국이 트럼프의 수렁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박찬수ㅣ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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