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자유기고가
늦가을 들판을 200㎏ 돼지 한 마리가 달렸다. 한 여자가 헉헉거리며 뒤쫓았다. 그 여자를 따라 동네 개 세 마리가 달렸다. “새벽아, 돌아가야지.” 한 살 먹은 돼지 새벽이는 신이 났다. 노을이 새벽이의 분홍 등으로 떨어졌다.
지난 3일 나는 국내 최초 ‘생추어리’(농장 동물 안식처)에서 유일한 주인인 돼지 새벽이의 똥을 치우며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봤다. 자원봉사자로 반나절 일하는 중이었다. 울타리 친 생추어리 안을 내가 청소하는 동안 활동가 누리가 새벽이랑 산책하러 나갔다. 사실 전력질주다. 평생 처음 본 살아 있는 돼지는 재빨랐다.
새벽이는 오이를 싫어한다. 대야에 새벽이 저녁밥인 사과, 배 따위를 담을 때 오이는 밑에 깐다. 골라내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누리가 자기 배낭에서 삶은 감자 열 알을 꺼냈다. 이걸 이고 일주일에 세 번 1시간 반 지하철을 타고 온다. 배낭에선 견과류도 나왔다. “겨울엔 열량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요.”
한 살 넘은 돼지는 원래 뭘 먹을까? 답을 찾기 쉽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외국 자료를 뒤졌다. 공장식 축산에서 고기로 키워진 돼지는 6개월이면 도축된다. 그래야 육질이 야들야들하다. 그전에도 빨리 살이 오르지 않는 돼지들은 패대기쳐 죽인다. 사룟값이 더 드니까. 돼지의 평균수명은 15년 정도다. 새벽이는 지난해 7월 한 종돈장에서 구조됐다. 동물권단체 디엑스이(DxE) 코리아가 분만사에 들어갔을 때 새벽이도 오물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어미 돼지는 앉았다 일어났다만 할 수 있는 틀(스툴)에 갇혀 평생 새끼를 낳는다.
‘새벽이’와 ‘사람’이 함께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새벽이 생추어리 제공
새벽이는 쑥쑥 자랐다. 돼지 한 마리로 살 곳이 필요했다. 누리는 지난 5월 자원봉사로 생추어리 터에서 쓰레기를 파내다 활동가가 됐다. 활동가 8명이 일하는 ‘새벽이 생추어리’는 콩가루 조직이다. 누리도 “이렇게 위계가 없는 공동체는 처음 봤다”고 했다. “가장 아래 있다고 여겨지는 동물과 자신을 대등하게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보니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 같아요.” 다들 한 푼 안 받고 새벽이 ‘사장님’을 위해 감자를 삶고, 번역을 하고, 후원금을 모으며 지극 정성으로 일한다. 새벽이는 존재 자체로 활동가다. 새벽이를 만나고 나면 ‘돼지 같다’는 말은 날쌔고, 호기심 많고, 까탈스럽도록 청결하다는 뜻이 된다. 그와 반나절을 보내면 돼지를 고기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돼지는 누군가에겐 눈엣가시이기도 하다. 새벽이를 죽이겠다는 협박 메시지도 온다.
활동가 누리는 직업이 두 개다. 온라인마케팅과 숲 해설을 한다. 생추어리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가 버겁기도 하다. “새벽이가 먹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는데 화면에 제 얼굴이 비쳤어요. 웃고 있더라고요. 누가 밥 먹는 걸 이렇게 행복하게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활동가 다희는 새벽이 곁에 앉아 가끔 노을을 본다. “햇살 좋은 가을날, 새벽이가 만들어놓은 볏짚 쿠션 위에 함께 누워 잠을 잔 적이 있는데 나중에 찍힌 영상을 보니 파리와 잠자리가 잠시 제 위에 앉았다 갔더라고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서서히 다시 관계를 맺어가는 중인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은 그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정의 내리며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고 썼다. 돼지 한 마리가 돼지로 살 수 있도록 인간 여덟 명이 짐을 나눠 진 그곳에서 똥 치우는 삽을 잠깐 든 나는, 그 알쏭달쏭한 사랑의 정의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스캇 펙은 이 정의에서 ‘사람’을 ‘생명체’로 바꿨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