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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트럼프와 이별하는 김정은, ‘인내’가 필요하다

등록 2020-11-25 16:44수정 2020-11-26 02:39

트럼프 시절 북-미 정상이 세차례나 만난 건, 평가야 어떻든 두 나라 관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때와 똑같은 지점에서 북-미 협상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바마와 트럼프의 경험을 미국의 새 정부가 어떻게 계승할지 서둘러 맛보려고 하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에게 필요한 건 ‘인내’일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4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극장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를 비롯한 새 외교안보팀을 소개하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4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극장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를 비롯한 새 외교안보팀을 소개하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의 대북 접근법은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블링컨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핵협상을 타결하는 데 참여했고, 북한 핵 역시 이란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핵무기와 생산시설, 핵 미사일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인권 등 다른 현안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이란 핵협상을 성공시킨 요인이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 방식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이 단계적인 핵협상에 성실하게 임할 때까지는 주변국과 협력을 통한 강력한 경제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무런 대가 없이 ‘독재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준 건 잘못이라고 블링컨은 비판했다.

바이든과 블링컨의 대북 인식을 고려하면, 북한과 미국의 협상은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을 ‘내 친구’라 부른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북한 정권에 어떤 믿음이나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로부터 다시 존경받는 미국’을 내세운 바이든의 외교정책 최우선 순위는 유럽과의 동맹 복원에 두어질 게 분명하다. 대선 과정에서 나온 바이든의 발언을 종합하면, 그는 북한 문제를 시급히 고민하기보다 일단 미뤄두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바이든 캠프를 잘 아는 정부 당국자는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정비해서 북한과 협상에 나서려면 앞으로 수개월은 걸릴 것이다. 그 전까지 북한이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북한이 미국 새 정부 출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달려 있다. 비교적 손쉽게 정상회담을 했던 트럼프 때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은 진입 문턱이 높고 까다로울 것이란 점을 북한도 익히 예상할 것이다. 이 문턱을 낮추기 위해선 오히려 긴장을 높이는 게 효과적이라는 전통적인 판단을 답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과거에도 미국 새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북한이 무력시위로 긴장을 끌어올린 사례는 여럿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불렀던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어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자, 북한은 그해 4월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5월엔 핵실험을 실시했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직후인 2012년 12월에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취임 직후엔 세번째 핵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전략적 인내’(stratigic patience)라는 말로 포장된 북한 버려두기 정책으로 나타났다. 오바마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진지한 노력 역시 기울이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와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이 무력시위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북한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중국이 주겠다는 식량의 수령을 거절했다고 한다.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 사정이 최악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최근엔 북한 동해안 기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시험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한·미 감시망에 슬쩍슬쩍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협상이 수렁에 빠진 지 오래고, 이에 대응해 ‘핵무력을 중추로 한 자위적 군사력 강화’를 천명한 북한으로선 언제든지 무력시위에 나서는 게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니다. 단거리 미사일에서 시작해 장거리 미사일로 점점 수위를 높여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바이든과 새 정부의 관심을 끄는 게 효과적일 가능성은 낮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는 미국뿐 아니라 북한에도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국이 하루빨리 북핵 문제에 달려들어 해법을 내놓길 바라는 북한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 이슈는 유럽과 중동에 비해선 뒤로 밀리는 게 워싱턴의 현실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트럼프 시절 북-미 정상이 세차례나 만난 건, 평가야 어떻든 두 나라 관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중요한 전환점임이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때와 똑같은 지점에서 북-미 협상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바마와 트럼프의 경험을 미국의 새 정부가 어떻게 계승할지 서둘러 맛보려고 하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에게 필요한 건 ‘인내’일 것이다.

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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