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전 임원진. 왼쪽부터 이 부회장 ,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이 엊그제 열렸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활동을 평가한 전문심리위원단 3명이 의견을 진술했다. 피고인인 이 부회장도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는 준감위에 대한 전문가 평가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할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한 터다. 언론들은 이 부회장의 운명을 가를 재판이라고 호들갑을 떨더니, 정작 평가 결과에 대한 보도는 인색하다.
평가의 핵심은 준감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다. 특별검사팀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이 부회장 쪽이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는 “긍정적인 진일보”라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가 지정한 강일원 위원(전 헌법재판관)은 “준법감시 조직의 위상과 인력을 강화한 점은 긍정적이나, (불법)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전체적 문맥을 보면 ‘한계가 많다’는 데 방점이 찍혔지만,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지 않고 황희 정승처럼 눙쳤다.
엇갈린 평가는 예상됐던 일이다. 재판부는 애초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문가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삼성 쪽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를 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물타기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평가 과정은 어땠나. 심리위원을 지정한 지 불과 한달 만에 평가 의견을 내놓으라고 했다. 심리위원들이 현장 조사를 한 건 고작 3일, 10시간도 채 안 됐다. 3명 모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조사와 면담에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다. 양형의 주된 기준으로 삼겠다면서 졸속으로 진행한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로 되돌아가보자. 대법원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2심을 완전히 뒤집었다. 2심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기대하며 묵시적 청탁을 한 점을 인정했다. 뇌물·횡령 금액도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높였다. 한마디로 더 중형에 처하라는 게 요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카드가 등장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회복적 사법’이라는 이론에 근거해 “삼성의 준법경영을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준법경영 의지와 활동을 보여주면 선처의 근거로 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삼성은 냉큼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배임·횡령·뇌물 행위로 ‘선처의 기회’도 없이 처벌받은 다른 재벌 총수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위기 때마다 새롭고 다양한 ‘법률 기술’로 처벌을 피해왔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수사로 두번째 구속 위기에 처하자 ‘수사심의위원회’란 무기를 꺼냈다. 법조기자들도 생소한, 생긴 지 2년이 채 안 된 기구다. 억울한 형사사건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데 재벌 총수가 갖다 썼다. 위원회는 각계의 시민과 전문가 250명 중 13명으로 꾸렸는데, 삼성을 적극 옹호해온 교수가 위원으로 추첨되는 우연까지 겹쳤다. 결과는 “수사도 기소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부회장은 구속을 피했고, 검찰은 기소도 못할 뻔했다. 이 부회장의 법적 대응에는 다양한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법률 기술자들이다. 그의 변호인단에는 전 검찰총장, 전 대법관 등 법조인 수백명이 포진해 있다. 국내 대형 로펌과 회계법인의 전문가도 수두룩하다. 삼성 지킴이를 자처하는 일부 언론과 교수들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공고한 ‘삼성 카르텔’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삼성 총수 일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대형 불법·비리가 불거지면 일단 전방위 여론전을 펼친다. 여의치 않으면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법적 유불리를 집요하게 따져 처벌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대국민 사과와 다짐, 언제 그랬냐는 듯한 과거 회귀를 반복해왔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상식과 도덕에 반하는 ‘법적 승리’를 결코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수용할 뿐이다. 이기고도 지는 길이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은 이르면 연내에 최종 선고가 나온다. 전문가 평가가 엇갈리니 무엇을 취사선택할지는 오롯이 재판부의 몫이 됐다. “정의로운 판결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사법 정의의 본질을 곱씹어 보면 좋겠다.
김회승ㅣ논설위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