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환ㅣ베이징 특파원
“중문대의 폭도들이여, 졸업을 축하한다.”
검은색 천에 흰색 페인트로 구호를 적었다. 졸업 가운을 입은 학생들은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학교 쪽이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대체하자,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 등이 자체 오프라인 행사를 마련했다. <동방일보>는 지난 11월19일 낮 12시15분께 시작된 홍콩중문대의 ‘졸업식 시위’가 30분 남짓 만에 평화롭게 막을 내렸다고 전했다.
지난해 중문대 졸업식은 11월7일 열렸다. 졸업 가운이나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학생 1천여명이 행사장으로 모였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공개한 당시 영상을 보면, 학생들은 교정 곳곳 계단에 붙어 있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얼굴 사진을 밟고 지나갔다.
졸업식장에서 중국 국가(의용군 행진곡)가 연주됐다. 참석 학생 대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뒤로 돌렸다. “5대 요구, 하나도 뺄 수 없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쩌렁쩌렁한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날 대학 당국은 ‘특별한 상황’을 이유로 행사를 예정보다 앞당겨 마쳤다. 학생들은 교정을 돌며 기념사진을 찍고 구호도 외쳤다. 졸업생들은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이렇게 말했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도 여기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싸우고 있다고.”
“대학 교정은 우리의 입장을 알리는 데 알맞은 장소다. 홍콩의 미래 세대로서 우리가 여전히 싸우고 있음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자유가 우리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날 때까지, 우리는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문대와 같은 날 졸업식을 한 홍콩과기대에서도 학생들은 졸업식장 연단에 올라 구호를 외쳤다. 그보다 이틀 빨리 졸업식을 한 홍콩이공대에서도 졸업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송환법 반대 시위 때 사용하던 펼침막을 앞세우고 교정을 행진했다. 흔한 풍경이었다.
중문대 졸업식 나흘 뒤인 지난해 11월11일, 홍콩에서 ‘도심 마비 시위’가 시작됐다. 각 대학으로 시위대가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중문대 교정에도 청년·학생 수천명이 모여 경찰과 대치했다. 지하철역에서 교내로 연결되는 ‘2번 다리’는 치열한 공방전의 현장이었다. 중문대를 포함한 각 대학 점거 시위대는 11월17일 자진 해산했지만, 홍콩이공대에 있던 시위대 1천여명은 자리를 지켰다. ‘이공대 봉쇄’의 서막이었다.
시위대 수천명이 연일 이공대 부근까지 접근해 연대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해산하지 않으면 폭동죄를 적용하겠다고 을러댔다. 고립된 이공대 교정 부근에선 몰려온 부모들이 갇힌 자녀들의 안전한 귀가를 요구하며 울부짖었다. 이공대 봉쇄는 홍콩 민주파가 11월24일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뒤에야 풀렸다. 그사이 줄잡아 800여명이 체포됐다.
올해 중문대 졸업 시위 참가자는 지난해에 견줘 10분의 1로 줄어든 100명 남짓에 그쳤다. 지난해와 똑같은 구호를 외쳤고, 똑같은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지난 6월30일 발효된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란 구호도, 시위대의 국가 격인 ‘홍콩에 영광을’이란 노래도 모두 불법이 됐다.
졸업 시위 이튿날인 11월20일 오후 3시께, ‘2번 다리’를 거쳐 중문대 교정으로 경찰 40여명이 진입했다. 홍콩보안법 전담 수사팀이다. 홍콩 경찰은 지난 7일 현직 구의원 3명을 포함해 중문대 졸업 시위 관련자 8명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재학생 3명에게는 홍콩보안법(분리독립 선동) 위반죄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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