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61회 영상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 이탈이 이어진다. 1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36.7%에 그쳤다. 2주 연속 최저치 경신이다. 콘크리트와 같았던 지지층이 흔들리는 게 뼈아프다. 진보층 지지율은 59.6%로, 최근 2주 사이 12.4%포인트나 떨어졌다.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국민 열 중 네명이 등을 돌렸다.
더불어민주당의 형편도 비슷하다. 지난 10일 국민의힘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저지를 뚫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검찰개혁의 발판이 마련됐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54.2%)이 “잘된 일”이라는 응답(39.6%)을 웃돈다. 진보층의 32%도 “잘못됐다”에 손을 들었다.
현 정부 지지층의 이탈은 ‘진보 분열’을 뜻한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출발은 ‘조국 사태’였다. 한편은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동일시하며 조국 사퇴에 반대했다. 다른 한편은 오히려 조국 수호에 무리하게 집착하면 검찰개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진보 분열을 가속화했다. 한편은 추 장관 지지와 검찰개혁을 동일시한다. 또 다른 한편은 추 장관의 무리수가 검찰개혁에 독이 된다고 우려한다. 진보의 44.6%는 ‘윤 총장 사퇴’에 찬성한다. ‘추 장관 사퇴’에 손을 든 29.3%보다 많다. 하지만 ‘동반사퇴’에 찬성한 13.2%를 고려하면, 사실상 진보는 두 쪽이 났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최저치, 콘크리트 지지층 금갔다”(2016년 10월14일 <한겨레> 보도) 현 상황은 4년 전과 외견상 판박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지지층까지 이탈하며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여러모로 다른 두 정권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의 핵심이 민심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진보 분열은 대통령을 조기 레임덕에 빠뜨릴 수 있다. 내년 4월 보궐선거 전망도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정치적 유불리보다 더 가슴 시린 것은 모두가 갈망했던 ‘국민통합’이 어려워진 것이다. 4년 전 촛불혁명에는 극우세력을 뺀 대다수 국민이 뜻을 같이했다. 대통령도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보수를 끌어안기는커녕 진보조차 갈라졌으니 역사적 좌절이다.
진보 분열은 민주주의와 진보의 전통적 가치가 후퇴한 결과다. 목적이 옳아도 과정과 절차가 잘못됐으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한데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찍어내려는 듯한 ‘비상식’과 ‘헛발질’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훼손 논란을 자초했다.
자칭 검찰주의자인 윤 총장이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는 ‘영웅’처럼 부상하고,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국민은 검찰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조한 것에도 국민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지지층이 이탈하고 진보가 분열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내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기는커녕 ‘반개혁’ 내지 ‘배신’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오만과 독선의 이미지를 고착시킨다. 진보가 폐쇄적 ‘진영논리’에 갇힌 모습도 퇴행적이다. 사안의 옳고 그름이나, 진실이 무엇이냐보다 내가 좋으냐 싫으냐, 내 편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광기’가 휘몰아친다. 집권세력이 무슨 짓을 해도 ‘못난이’ 야당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맹신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아는 짓이다.
진보 분열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보수는 기득권 옹호 세력, 진보는 기득권 타파 세력이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상황은 변했다. 여섯 정권을 진보와 보수가 정확히 절반씩 나누어 가졌다. 진보도 정치권·관계·경제계·학계 등 사회 곳곳의 높은 자리에 터를 잡으며 기득권화가 진행됐다. 조국 일가 논란, 현 정부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 서울·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에서 국민이 본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자성보다 이를 가리기에 급급한 ‘내로남불’에 진보까지 갈라졌다.
촛불혁명에서 ‘평등·공정·정의’로 상징되는 진보적 가치가 전 국민에게 확장됐다. 하지만 지금 진보는 분열과 확장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 사회는 진보-보수의 프레임보다 개혁-수구의 프레임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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