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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독재자’ 비난받은 루스벨트에게서 배울 점

등록 2020-12-16 15:53수정 2020-12-17 02:38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대법원 개혁은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불렀다.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토대를 허물어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루스벨트 시대를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극심한 혼란에 빠진 시기’로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왜 그럴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립해 항의하는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립해 항의하는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취임 이후 최저치다. 레임덕 시작이란 말부터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졌다’는 평까지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에 발맞춰 정치적 대립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논란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국회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들이 속속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며 입법됐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재,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무너졌다는 격한 비난이 야당과 보수 언론에선 나온다. 과연 그런가. 정말 의회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일까. 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부가 독재로 회귀하는 게 현 상황의 본질일까.

각자 시각은 다르겠지만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시대를 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다. 지금의 한국과 흡사한 지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화당의 거센 반대에도 뉴딜 정책을 담은 법률의 입법을 밀어붙였다. 뉴딜의 핵심으로 꼽히는 사회보장법과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을 두고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고 비판했다. 루스벨트에 대해선 ‘독재자’ ‘사회주의자’ ‘소련 공산당의 첩자’, 심지어 ‘파시스트’라는 공격까지 있었다.

특히 루스벨트가 추진한 미국 연방대법원 개혁은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불렀다. 대법원이 뉴딜 법안에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리자, 루스벨트는 대법관 수를 두배로 늘려 미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민주주의 토대를 허물어뜨린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일부 의원조차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사법부를 대통령 마음대로 바꾸는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요즘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을 연상시킨다. 루스벨트의 대법원 개혁 시도에 비하면, 공수처법을 ‘삼권분립 훼손’이라 비난하는 건 애교에 가깝다.

숱한 논란 속에 입법에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려는 구상은 의회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그러나 역사는 루스벨트 시대를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극심한 혼란에 빠진 시기’로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루스벨트를 거치며 미국은 진정한 대중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대통령제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말한다. 보수적 법학자인 로버트 보크는 “공화국의 본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을 평가하면, 루스벨트가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건 전례 없는 논란 속에서도 그가 추진한 뉴딜 정책과 입법이 미국 사회를 전향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 때문일 것이다. 루스벨트는 합법 절차를 통해 개혁을 밀어붙이고, 선거라는 제도로 국민 승인을 받았다. 지금 야당과 보수 언론은 여당이 거대 의석을 지렛대로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고 공수처법과 국가정보원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걸 ‘독재’라고 비난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렇게 통과된 법이 수십년 이어온 검찰과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을 끝내고 남북간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느냐 여부일 것이다.

그때와 다른 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대통령의 태도다. 루스벨트는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에게 직접 설명을 했다. 뉴딜 입법이 선거에서 이기려는 정략이란 비난엔, 이것이 공익과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반격했다. 사법부 개혁 논쟁에선 “미국 헌법은 법률가의 계약이 아니라 평신도(일반 시민)의 문서다. … (1787년 미국 헌법 제정에 참여한) 대표단의 다수는 법원과 의회·행정부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진화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갈 거라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했다.(1937년 9월17일 제헌절 연설) 이 연설은 야당의 더 큰 반발을 불러왔지만, 루스벨트는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쉬운 건 그 부분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데,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솔직한 얘기를 듣긴 어렵다. ‘대통령 의중’을 헤아리는 추측과 ‘이게 대통령의 뜻’이라는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 국민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윤석열 총장 징계위원회가 끝났으니 이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길 기대한다. 왜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고, 무엇을 기대했으며, 지금 그 기대는 지켜지는지, 검찰총장 임기제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대통령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 루스벨트 뉴딜의 성공 비결은 국민과의 소통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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