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섭ㅣ국제뉴스팀 선임기자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 끝에 있는 노르웨이는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자료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4위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 개발 지수’에서는 1위다. 코로나19가 유럽을 강타한 상황에서도 핀란드와 함께 바이러스 확산을 잘 억제했다.
노르웨이는 경제 통계에 있어서도 본받을 점이 있는 나라다. 모든 과세 대상자의 각종 소득 자료를 금융기관 등 제3자의 자료까지 동원해 철저히 검증한다. 이런 투명하고 꼼꼼한 통계 덕분에 새로운 ‘부자의 비밀’이 최근 드러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달 홈페이지를 통해 노르웨이 경영대학 소속 안드레아스 파예렝, 이탈리아 에이나우디 경제금융연구소 소속 루이지 귀소 등 4명의 학자가 쓴 논문 ‘투자 수익의 불균형과 지속성’을 주목할 논문으로 소개했다. 이 논문은, 부자가 어떻게 더 부자가 되는지를 실증 자료 분석으로 밝혀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같은 조건으로 같은 돈을 투자해도 부자들이 얻는 수익이 항상 더 많다. 흔히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지만, 더 근본적인 ‘부익부 빈익빈’의 원인으로 ‘공정 경쟁’이 성립하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결론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자본소득과 보유 자산에 대한 과세 행정 자료를 분석해서 나왔다. 분석에 이용된 자료는 3천만건에 달한다. 이 기간 노르웨이 국민들의 투자 수익률은 3.8%였는데, 자산 하위 10%와 상위 10%의 평균 수익률 격차는 세전 18%포인트, 세후 10%포인트로 나타났다. 세금이 그나마 투자 실력 차이를 줄여준 셈이다.
부유층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은 마찬가지였다. 상위 75%의 개인이 2004년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2015년까지 이를 1.5달러로 불린 반면, 상위 0.1%에 속하는 개인은 1달러를 2.4달러로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11년 만에 수익률이 90%포인트 벌어진 것이다.
부자일수록 투자 수익률이 높다는 결론은 계층별 투자 수익을 단순 평균해서 나온 게 아니다. 투자 규모 등의 요소가 끼치는 영향을 배제한 뒤 비교해도 격차가 꾸준하다는 게 이 논문의 분석 결과다.
부자들의 투자 수익률이 더 높다는 것 자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은 “부자들은 위험이 높은 곳에 더 투자할 여력이 있고 실제로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설명이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논문은 이런 통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 위험도 등 계측 가능한 요소들이 수익률 격차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은 “개인 투자자의 특성이 수익률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이런 특성은 금융에 대한 전문적 이해도, 금융 관련 정보 처리 및 활용 능력, 타성을 극복하는 능력, (사업가의 경우) 사업 관리 능력 등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금융 또는 투자 ‘지능’의 차이가 빈부 격차를 키운다는 이야기다.
부자와 가난한 이의 투자 수익률 격차는 그들의 자녀 세대에서도 반복되고, 이 격차의 주요 원인은 성장 배경 등에서 비롯된 투자 능력 격차라고 논문은 지적했다.
노르웨이는 2019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빈부 격차가 5번째로 낮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도 부자와 빈자의 공정 경쟁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을 논문은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지식과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더 중요한 사실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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