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그녀의 표정은 늘 밝았다.
목소리는 요란스럽게 느껴질 만큼 컸다. 별것 아닌 이야기임에도 감탄사를 썼으며 제스처도 과했다. 억지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이 거짓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맑은 유리 위에 구슬이 굴러가듯 유쾌했으며 긍정적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또 소리 내어 웃기를 좋아했다. 아니, 소리 내어 웃기를 좋아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를 보면 우울한 나까지 즐거워졌고 그녀를 만나는 동안만큼은 힘이 났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벌써 몇 년 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녀가 생각난 것은 얼마 전 한 도시에서 북 토크를 하다 만난 어떤 여성 때문이었다. 두 여성은 얼굴도 몸매도 스타일도 닮지 않았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다. 색깔 때문이었다. 블루. 두 여성이 풍기는 색이 블루였다.
잘 웃던 그녀가 어느 날 자신이 낸 책을 수줍게 내밀었다. 표지가 블루였다. 그녀와 블루는 어울리는 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블루라니. 적어도 내게 블루는 고독한 색이다. 그녀와 고독은 왠지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인간은 고독하다’는 전제 아래 모든 인간은 블루를 품고 있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신비한 보라가 차라리 그녀의 색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표지가 블루인 그 책을 당장 보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읽어야지 했다. 사거나 받은 책이 침대 머리맡에 쌓여갔다.
어느 겨울밤, 오늘 같은 날이었지 싶다. 그날도 오늘처럼 목 디스크가 다시 돋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다. 진통제를 먹고 한참을 잤다.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용기도 힘도 없었다. 옆으로 몸을 돌렸다. 침대 옆에 쌓아 둔 책더미 속에서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고독한 색의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책은 폭력 남편으로부터 자신과 아이를 지키려는 그녀의 일기였다. 읽는 내내 화가 나고 슬퍼서 읽다가 멈추다가 하였다. 그녀가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고 크게 웃었던 것은 한쪽 귀를 다쳐서였던 것이다. 남편에게 맞아서 한쪽 귀가 잘 안 들렸던 거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그 사람의 사랑한다던 달달한 말이 욕으로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추울 때 잡아주던 따스한 손은 돌처럼 단단해져 머리를 치고 가슴을 쳤다. 땅을 디디고 선 든든했던 그의 발은 무기가 되어 옆구리를 찌르고 몸을 걷어찼다. 그녀는 아이 때문에라도 참아야지 견뎌야지 하다가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와 살고 싶다는 아이의 울음에도 세상은 남편의 편이었다. 가족만큼은 내 편이어야 하는데 내 편이리라 생각했는데 젊으니까 아이는 아빠에게 두고 새 인생 살라고 했다. 세상은 그랬다. 무조건 그녀 탓이라고. “그런 남자와 누가 만나래? 그런 남자와 누가 살래? 한 번 결혼했으면 잘 살아야지. 애를 생각해서라도 참아야지. 우리도 다 참고 살았어. 다 그런 거야.” 남편에게서 아이를 데리고 도망을 다녔다. 이곳저곳. 돈도 다 떨어지고 갈 데도 없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든 시끄럽다고 싫어하고 눈치를 받았다. 그녀는 철저하게 홀로였다. 낭떠러지에 선 그녀에게서 남편은 아이마저 빼앗아 갔다.
북 토크 하러 갔다가 그녀를 닮은 젊은 여성을 보았다.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큰아이를 남편에게 빼앗긴 여성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아이를 보며 내 가슴이 조여왔다. 세상은, 법은, 사람들은 여전히 폭력을 당한 여성의 편이 아니다. 직업이 없고 힘이 없는 젊은 엄마의 편이 아니다. 그녀와 아이가 며칠 동안 내내 눈에 밟혔다.
지난날 ‘블루’였던 그녀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하였다. 여전히 통통 튀는 밝은 목소리다. 그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인을 통해 소식은 들었다. 아이도 되찾고 직장도 다니다가 늦은 나이에 하고 싶던 공부를 하여 논문까지 썼단다.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 보였다. 아이는 이제 청소년이었다. 블루였던 그녀는 지금 어떤 색일까?
지금 블루인 여성을 생각한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려면 주위의 믿음과 따스한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가족은 더욱 내 편이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법은 누구의 편일까? 어디를 가든 아이가 시끄럽다고 눈치를 받지는 않을까? 그것은 마음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강화의 겨울은 도시보다 춥다. 그녀가 숨 쉬고 있는 도시의 겨울은 더 추울지 모르겠다. 그녀가 아이와 둘이 고독과 배고픔 속에 떨고 있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