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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일’의 의미 / 김진해

등록 2020-12-20 17:55수정 2020-12-21 02:41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단어는 고립되어 쓰이지 않는다. 단어는 한 사회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배적 신화에 기대어 산다. 이를테면 다음 두 목록에 함께 쓰인 ‘일’과 ‘돈’이 각각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생각해보자.

1) ㄱ. 집, 먼지, 창고, 냄비, 일

ㄴ. 임금, 출퇴근, 노조, 노무관리, 일

2) ㄱ. 음식, 옷, 차, 집, 돈

ㄴ. 이율, 은행, 주식, 투자, 돈

(1ㄱ)의 ‘일’은 몸과 직접 관계가 있다. 쓸고 닦고 고쳐야 하는 몸의 구체적인 움직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1ㄴ)의 ‘일’은 매매되는 노동이다. 돈으로 환산되고, 정해진 규약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2ㄱ)의 ‘돈’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지만, (2ㄴ)의 ‘돈’은 그 자체를 축적하거나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추상적인 존재다. 수치의 등락 자체가 전부다.

‘일’과 ‘돈’에 대한 지배적 신화는 (1ㄴ, 2ㄴ)의 맥락에서 일어난다. 몸놀림이나 사람과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탈피해 있다. ‘일’은 수량화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돈을 번다’. 그러니 가만히 놔두지 말고 굴리고 투자해야 한다.

‘다행히(!)’ 지구적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일’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평소라면 임금, 초과이윤율, 사회적 평판을 기준으로 구분했을 거다. 지금은 어떤 노동이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필수적인지를 묻는다. 보건의료와 돌봄노동 종사자, 배달업 노동자, 청소·경비 노동자, 그리고 농민. 이러한 ‘필수노동’에 대한 논의와 함께 ‘도대체 내 손과 발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뭔가’도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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