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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차별금지법과 말 / 김진해

등록 2020-12-27 15:54수정 2020-12-28 02:39

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수영 강사에게 가장 가르치기 고약한 학생은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새로 배우기보다 이미 몸에 밴 동작을 고치는 게 훨씬 어렵다. 말도 그렇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때 쓰기도 했고 여전히 쓸 수도 있지만, 이제는 여러 윤리적인 이유로 쓰지 않는 말들’을 공유하자는 취지다.

‘확찐자, ○린이, ○○다움, 미성숙, 상남자, 장님, 벙어리, 병맛, 여배우, 아줌마, 정신연령, 암 걸릴 뻔했다, 어린애같다, 여자같다, 사춘기냐, 이래서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해.’처럼 다양하다. ‘건강하세요’나 ‘투병’(鬪病), ‘성적 수치심’, ‘결정장애’는 생각지도 못했던 예이다. 신분증을 받고 음성해설 기기를 빌려주는 알바를 한 청년은 한 어린이한테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과 같이 왔냐’고 물었다가 보육원 교사와 함께 온 걸 알고, 그때부터 부모 대신 보호자나 어른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장애,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평등법이다. 법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말’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차별은 법 이전에 말과 닿아 있는 낱낱의 삶과 경험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차별은 날마다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으로 관철된다. 가장 흔한 흉기는 말이다. 그러니 내 말에 대한 관찰과 발견의 과정이 필요하다. 차별과 혐오가 그랬듯이 ‘모두를 위한 평등’도 말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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