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된 변창흠 후보자가 지난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안재승ㅣ논설위원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는 가운데 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 보고서’를 통과시켰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비판 여론에 귀기울이지 않고 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창흠 신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고위 공직 후보자 7대 인사 검증 기준’에 위배되는 잘못이 드러나지 않았다. 7가지 기준은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음주 운전, 성 비위다. 또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재산 축소 신고, 카드 대출을 통한 아파트 매입, 서울대 환경대학원 동문 특혜 채용 등 여러 의혹들은 대부분 과도한 부풀리기거나 아니면 말고 식 주장이 많았다. 변 장관이 밝힌 주택 정책이 “북한식 부동산 정책과 어떻게 다르냐”는 색깔론 공세에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마저 읽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 장관 임명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와 관련한 변 장관의 발언은,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건설·교통 분야의 장관을 맡기에는 중대한 결격 사유이기 때문이다. 변 장관은 당시 “하나하나 놓고 보면 서울시 산하 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거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2인1조가 해야 할 일을 비용을 줄이려고 하청업체 노동자 한명에게 떠넘긴 탓에 김군은 목숨을 잃었다. 안전수칙 무시와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인재를 변 장관은 개인 책임으로 돌렸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인식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변 장관의 발언은 김군처럼 여전히 위험에 방치된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또 다른 김군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19살 청년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열차에 치여 숨진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한 많은 국민들에게 변 장관의 발언은 모욕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거듭 사과하지 않았느냐고, 얼마나 더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지난 일을 가지고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사과에 정답은 없다. 당사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진솔한 마음으로 계속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과를 받아야 할 김군은 세상에 없다. 김군의 유가족과 동료들은 변 장관의 사과를 거부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개한 육성 녹음에서 오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숨을 쉬고 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예요. 우리 아이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밝히고 싶어요.”
사과 방식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발언 내용이 처음 알려진 날, 변 장관이 내놓은 사과문은 석줄짜리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의사도 없었다. 김군의 유가족이 만남을 거부하자, 변 장관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용균씨 어머니와 고 이한빛 PD 아버지를 찾아가 “국토 관련 일만 하다 보니 교통은 잘 몰랐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고 급한 마음에 나섰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인식 부재만 또 다시 드러냈다. 김군 관련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변 장관에 대해 보수 야당과 언론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부적격 후보자’라고 얘기했다. 한해 산업재해로 2300명이 목숨을 잃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람이 먼저”라는,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정 철학을 내세우면서 변 장관을 국토부 장관에 임명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변 장관을 통해 주택 공급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어 집값을 안정시키고 싶어 하는 문 대통령과 여당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이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문 대통령과 여당이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변 장관 임명을 강행해 지지층까지 실망하고 돌아설 수 있다. 민심도, 정책도 모두 잃게 되는 것이다. 소탐대실을 자초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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