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과학기술 연구에도 알게 모르게 성과 젠더 편향이 스며들 수 있다는 지적은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잘 알려진 사례로, 1997~2001년 미국에서 허가 취소된 약품 10건 중 8건의 부작용이 유독 여성에게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와 동물 실험, 임상시험 단계에서 성차에 따른 약물 반응 차이를 잘 살피지 못한 채 무심코 남성 대상 위주로 연구가 이뤄져왔기 때문이라는 자성이 일었다. 자동차 충돌 시험에 쓰는 인체 모형이 남성 위주 기준에 맞춰져 자동차 안전이 여성에게 더 취약할 수 있다는 문제도 일찍이 제기돼 개선되고 있다.
성과 젠더 편향이 과학 발견과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의식은 연구방법 개선 흐름으로 이어졌다.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학술저널은 논문 저자들에게 필요한 경우에 성과 젠더 차이를 분석하는 내용을 논문에 담으라고 요구한다. 캐나다, 유럽, 미국의 연구비 지원기관들은 연구자들에게 비슷한 요건을 내건다.
가장 적극적인 건 유럽이다. 유럽위원회(EC)는 2013년부터 연구비 신청자에게 연구 설계와 데이터 수집, 분석, 해석의 단계에서 성과 젠더 차이를 다루도록 요구해왔다. 물론 수학처럼 성과 젠더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분야는 제외된다. 그 요건이 적용되는 분야는 점차 늘어 2020년엔 3분의 1가량에 달했다. 더 나아가 최근인 지난달 유럽위원회는 새해 2021년부터 ‘호라이즌 유럽’ 연구지원 프로그램에서 그 요건을 더 많은 연구 분야에 적용한다는 강화된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발맞추어, 2013년 유럽위원회가 이 정책을 처음 도입할 때 근거가 됐던 보고서 <젠더혁신>의 후속편도 지난달에 <젠더혁신 2>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tinyurl.com/yc4lvleh). 7년 동안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진 실제 연구사례가 담겼다. 1차 보고서 때 없던 인공지능과 로봇의 젠더 편향 문제를 다루는 연구사례가 실리고, 의학과 생명과학뿐 아니라 팬데믹, 기후변화, 에너지, 도시설계, 농업, 해양과학 등의 분야에서 성과 젠더 차이를 살필 때 어떤 새로운 발견과 혁신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강조해 보여준다.
보고서 1편과 2편에서 바뀐 부제목도 눈길을 끈다. 1편의 부제목인 ‘젠더 분석은 연구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는 2편에서 ‘포용적 분석은 연구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로 달라졌다. 성과 젠더 차이와 교차하며 결속하는 인종, 장애,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를 포괄해 함께 다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발견과 혁신에서 누군가 과잉대표, 과소대표 됨으로써 생기는 결과의 편향 문제를 줄이자는 “포용적 연구”(inclusive research)의 말뜻이 도드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