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손원제 ㅣ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정직 2개월’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제4부와 제12부가 각각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부실한 징계 추진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 검찰총장이라는 법률 관료에게 부여된 막강한 권력, 과도한 보호 장치, 빈약한 통제 장치를 돌아보게 된다.
제4부 조미연 부장판사는 총장의 2년 임기 등을 보장한 법 정신에 비춰, 직무배제는 예외적으로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제12부 홍순욱 부장판사도 총장의 법적 지위, 임기 등을 고려하면 2개월 정직은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봤다. 법적 보호 장치와 산술적 법 해석 아래서, 총장은 이제 대통령조차 손댈 수 없는 ‘언터처블’이다. 두달 정직도 회복 불능의 손해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가 총장 2년 임기제를 담아 검찰청법을 개정했다. 첫 수혜자는 김기춘이었다. 마음대로 총장을 갈아치우지 못하면 권위주의 정권의 검찰 장악도 웬만큼 차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때문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도 있다. 권위주의 정권은 총장 임기제 따위에 구애받지 않은 반면, 독립성을 준 정권은 검찰 폭주라는 난국에 봉착했다.
인신을 속박하는 형벌권은 가장 강력한 국가 권력이다. ‘수사와 기소’ 양대 형벌권을 독점한 검찰을, 총장은 제왕적으로 지휘한다. 일단 임명되면 임기 중엔 인사권을 쥔 대통령조차 떨게 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과 장관에겐 설령 총장이 “매우 부적절한” 재판부 분석 문건을 만들거나 “감찰 방해 혐의가 일응 소명되었다고” 해도 ‘정직 2개월’을 내릴 재량권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기우뚱한 특권이 야기하는 건 관료권력의 통제받지 않는 일탈 가능성이다. 총장이 수사·기소를 통해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행보를 하더라도, 누구도 쉽게 제어할 수 없다. 독립성의 역설이다.
윤 총장은 지난 11월3일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진짜 검찰개혁”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틀 뒤 대전지검은 기다렸다는 듯 ‘월성1호기 폐쇄 과정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살권수’는 메타포이지, 법률가의 용어가 아니다. 정권, 야당권력, 검찰권력 모두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 제대로 된 법률가적 정의이다. 메타포를 쓰며 정권 수사만이 정의인 양 강변하는 것이야말로 윤 총장이 법률가 아닌 정치인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살권수는 ‘수사를 통한 정치’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현직 총장의 ‘수사 정치’에 대한 반향은 거세다. 리얼미터 12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23.9%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대구·경북, 보수, 대통령 국정평가 ‘매우 잘못함’을 택한 응답층, 60대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강렬한 ‘반문 감정’이 이들을 묶는다.
윤 총장은 리얼미터 7월 조사에서 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르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당시 “지금은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것이 부각되다 보니까 (보수층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서 “이분들이 박 대통령을 감옥에 넣은 사람에게 표를 던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봤다.
지금은 ‘반문 감정’이 윤 총장에 대한 보수층의 악감을 뛰어넘게 하는 단계로 보인다. “친박은 그가 박근혜 정부를 넘어뜨린 원인 제공자라며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윤 총장으로서는 (모든 정권에) 같은 잣대를 들이댄 원칙론자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지난 22일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은 “그를 반문 연대라는 중간 지대를 통해 야권에 합류시키는 모양새 (…)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를 흔들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 잡겠다’야말로 윤 총장 지지율을 밀어올리는 저류의 감정일 것이다. 역으로 윤 총장의 살권수는 복수 실현의 기대를 키운다. 관료권력과 적대적 대중의 결합이다.
‘반문 감정’이 추동하는 윤 총장의 정치 행보는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함정으로 눈길을 이끈다. 법치 외관이 감싼 강한 관료권력과 취약한 선출권력의 불균형이다. 대통령의 능동적 노력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힘은 국정 성과, 그리고 소통에서 나온다. 부단히 국민 이해를 구하며 관료권력의 질주를 제어할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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