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l 영화감독·작가
케이티앤지(KT&G)상상마당 시네마가 사라진다. 홍대 유일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이 극장을 운영하고 <돼지의 왕>, <족구왕>, <피의 연대기> 등의 독립영화를 배급해왔던 케이티앤지상상마당 영화사업팀원 8명 중 7명이 권고사직 조치를 받았다. 권고사직을 거부한 2명 중 12년간 일한 팀장은 논산 캠핑장에, 13년간 일한 영사실장은 디자인 소품숍에 인사 발령 받았다. 그럼에도 케이티앤지는 상상마당 시네마는 문을 닫지 않는다고 말한다. 케이티앤지는 대행사 컴퍼니에스에스를 통해 상상마당 시네마와 영화사업팀을 간접고용 해왔고, 이 모든 책임을 위탁회사에 돌리고 있다.
나의 첫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케이티앤지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의 사업인 ‘대단한 장편 개봉 프로젝트’가 없었더라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독립영화를 발굴하여 극장 개봉을 지원하고 상상마당 시네마에서의 상영을 보장하는 사업이었다. 그렇게 영화사업팀을 배급사로 극장 개봉을 했다. 장편영화 제작도, 개봉도 처음인 신인 감독은 배급사를 통해 홍보대행사, 포스터 디자인 회사, 예고편 제작 회사, 온라인 마케팅 회사 등과 만나 협업의 즐거움을 누렸다. 배급사는 상영하고자 하는 극장에 미리 스크리너를 보내고 어떻게 배급할지 극장 측과 논의 후 개봉관 리스트를 확정하고 상영본과 포스터, 예고편 파일 등을 보낸다. 홍보대행사와 함께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각종 시사회 일정을 챙기고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개봉 이후 실적이 어떻든 끝까지 일정을 완주하고 이후 아이피티브이(IPTV)·브이오디(VOD) 서비스와 같은 부가판권 판매 및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계속해서 알리는 것 역시 그들의 일이다. 혼자서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이 과정을 배급사의 네트워크, 경험치, 실력을 통해 진행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배급 역시 수많은 이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배웠다. 그렇게 관객 5654명을 만났다. 상업영화 기준으로는 턱없이 적은 수지만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정말이지 찬란하게 반짝였다. 배급사는 혼자 보기 아까운 영화를 발굴하고 어떻게 하면 영화를 좀 더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그 자리를 만든다.
이처럼 상상마당 시네마와 영화사업팀의 브랜드는 케이티앤지가 홀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과의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케이티앤지는 영화사업팀의 운영을 사실상 중단했다. 지난 10월, 나를 포함한 18인의 감독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영화사업팀과 시네마 폐지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케이티앤지는 재정비를 하는 것뿐이라며 여론을 무마시킨 후 기존의 판권 계약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직원 1명만을 남겨두었다. 그 어떠한 논의도 소통도 없었다.
누군가는 돈이 되지 않으니 사업을 접는 것이 기업의 이윤 추구 목표에 맞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걸까.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는 작년부로 극장을 남겨두고 자체적인 투자사업을 정리했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중 몇몇을 폐관했다. 현재 독립·예술영화는 국고로 지원되는 개봉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개봉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관객이 현저히 줄자 몇몇 상업영화는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오티티(OTT) 서비스에 부가판권을 팔았다. 정말로 극장은 사라지고 있다.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정신 차려보면 언제든지 맘 놓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다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지역·대안 문화를 만들고 지켜오던 수많은 극장, 서점을 비롯한 문화예술 공간이 문을 닫고 있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 정부의 지원체계와 문화에 대한 기업과 대중의 무관심이 그 속도를 더하고 있다. 과연 케이티앤지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경쟁에 입각한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해야 하는 건 우리에게 극장과 영화는 무엇이었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