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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시간에 쫓기다 / 김진해

등록 2021-01-03 17:01수정 2021-01-04 02:08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비극은 시간을 분리하면서 시작됐다. 죽음의 공포는 시간이 무한히 뻗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간의 무한성과 인생의 유한성. 결국 우리는 죽는다!(아, 무서워.) 반면에 공간의 무한성 앞에서는 안 떤다. 달에 못 가도, 뛰어봤자 금방 땅에 떨어져도 절망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과거와 현재만 있고 미래는 없다. 있어도 현재 벌어지는 사건이 이어지는 2~6개월 정도의 가까운 미래다. 무한한 미래라는 관념이 없다. 생명보험이나 종교가 잘될 리 없다. ‘씨 뿌릴 때, 소 꼴 먹일 무렵’처럼 사건이나 자연현상과 함께 표현될 뿐이다.

문명사회는 시간을 별개의 사물인 것처럼 객관화시키고 여러 유형의 표현을 만들었다.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진 직선 위를 움직이는 사물이다(‘시간이 간다, 온다, 흐른다’). 우리는 이 시간을 ‘맞이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한다. 시간은 원처럼 거듭된다(‘봄이 돌아왔다’). 사물화하자 양이나 부피, 길이를 갖게 된다(‘시간이 많다, 적다’, ‘있다, 없다’, ‘시간을 늘리다, 줄이다’).

근대사회는 시간을 화폐로 대한다. 자본주의는 시간의 화폐화로 작동된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아끼고, 벌고, 절약해야’ 한다. 아무리 ‘쪼개어 써도’ 우리는 시간에 ‘쫓긴다’. 일정으로 꽉 찬 삶은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는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은 없애야 할 적이다. 강도에 쫓기듯 시간에 쫓기는 삶에, 시간에 쫓기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노동에 어찌 구원이, 해탈이, 해방이 찾아올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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