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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테헤란, 워싱턴, 평양 잇는 ‘체스판 외교’를 / 박민희

등록 2021-01-14 14:26수정 2021-01-15 02:10

이란을 방문한 최종건(왼쪽 두번째) 외교부 제1차관이 11일 테헤란 이란 외교부 청사에서 자바드 자리프(오른쪽 두번째) 이란 외교장관과 양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란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이란을 방문한 최종건(왼쪽 두번째) 외교부 제1차관이 11일 테헤란 이란 외교부 청사에서 자바드 자리프(오른쪽 두번째) 이란 외교장관과 양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란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선박과 선원들을 데려오는 문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때문에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 원유대금 70억달러(약 7조6천억원)의 해법,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둔 미국-이란의 기싸움이라는 국제관계의 묵직한 현안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란이 민간 선박을 압박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이란의 발표대로 환경오염 문제가 있다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신속하게 조사를 끝내 선원들이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한편, 한국이 이번 사태를 한-이란, 한-미,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 등을 함께 진전시킬 ‘고차방정식 외교’로 풀어간다면, 전화위복으로 만들 수 있다.

20일 취임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 과제는 ‘이란 핵합의’다. 오바마 대통령-바이든 부통령 시절이던 2015년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P5+1)이 힘을 모아 이란과 맺은 핵합의(JCPOA)를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 합의를 복원하는 것은 트럼프가 망친 외교정책을 바로잡는 핵심 조처다. 특히 바이든이 강조하는 다자주의 외교와 동맹 강화에 중요하다. 핵합의에 참여했던 유럽국가들은 미국의 복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중국의 ‘일대일로’ 영향력 확대의 핵심 축인 이란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겨 중국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고려도 담겨 있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이란과의 핵협정 협상이 빠른 시일 안에 어떤 형태로든 시작될 것이고, 6월18일 이란 대선을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도 이란의 로하니 정부도 시간이 촉박하다”며 “이란이 여러 강경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협상을 신속하게 진전시키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이란 내부에서 강경-온건파 대립이 첨예하지만, 한국에 묶인 거액의 돈으로 경제난과 코로나19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는 점에선 의회·군부의 강경파들이나 중도파 로하니 정부 사이에 이견이 거의 없다. 그동안 로하니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2차례 친서를 보내는 등 이란 정부가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가 불편해져 북핵 협상이 어려워질까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우호적이었던 한-이란 관계는 지난 2년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돈을 이란에 돌려주는 것은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불가능하다. 2005년 미국 재무부가 북한 돈 2400만달러(약 264억원)가 예치돼 있던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 불법자금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목한 ‘BDA 사태’ 당시, 전세계 어느 은행도 이 돈의 송금에 관여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미국 정부가 나서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서야 북한에 송금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이란의 백신 구매에 동결자금을 활용하는 방안, 유럽연합과 이란의 교역 채널인 인스텍스(INSTEX) 방식 등을 모두 검토했지만, 번번히 미국의 제재 벽에 막혔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은 선박 나포와 동결자금 문제를 가지고 당장 바이든 외교안보팀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최대한 빨리 북-미 대화가 시작되기를 바라지만, 바이든 외교안보팀의 관심은 온통 이란 핵합의를 어떤 방식으로 살려낼지에 쏠려 있다.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제이크 설리번은 2015년 이란 핵합의 주역이다. 토니 블린컨 국무장관 내정자는 이란 핵합의가 북핵 문제 해결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이란과의 현안을 바이든 시대 한-미 동맹의 첫단추를 꿰는 과제로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핵 협상을 두고 줄다리기 중인 미-이란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고, 바이든 행정부에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로드맵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은 노동당 대회를 통해 한·미가 대북 접근법을 바꾸면 대화에 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술핵무기 개발 등 도발과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신호를 내놨다. 한국은 미국의 최대 현안인 이란 문제를 함께 풀면서, 바이든 안보팀이 북-미 협상에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협업해야 한다. 이란과의 현안을 선박 나포 해결로 좁히지 말고, 국제정치의 복잡한 체스판 위에서 한국의 전략을 펼쳐나갈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강경화 장관이나 경제사절단의 이란 방문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도 필요하다.

|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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