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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뒷담화 / 김진해

등록 2021-01-17 17:17수정 2021-01-18 02:38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일종의 중독증이자 ‘인간적’ 성향. 끊기 쉽지 않다. 우리는 말을 통한 협력을 좋아하기 때문에 뒷담화를 즐긴다. 눈치 보지 않고 누군가를 통쾌하게 ‘씹을’ 수 있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십중팔구 선행보다 악행을 ‘씹게’ 되는데 유익한 면이 없지 않다.

자리에 없는 사람이 행한 각종 나쁜 짓을 다루기 때문에, 집단의 윤리적 기준을 재확인할 수 있다. 무릇 평범한 사람들은 이기심, 무례함, 비열함, 뻔뻔함, 폭력성, 부패를 반대한다. 뒷담화는 이런 기준을 어긴 사람에 대해 말로 내리는 징계이다. 뒷담화를 까는 동안, 우리는 누구보다도 ‘윤리적 존재’로 승화된다. ‘나 아직 걔처럼 안 썩었어!’ 남 씹으며 거룩해지기.

유명인에 대한 뒷담화야 ‘수다’ 차원에서 끝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뒷담화는 다르다. 관계를 규정하고 구성하는 직접성이 있다. 게다가 말하는 이가 연루된 얘기라면 더욱 열을 올리게 된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평가를, 자신에 대해서는 변호를 해야 한다. 일인이역은 뭐든 바쁘다. 총알이 당사자를 맞추지 못하니 본인이 내상을 입기 십상.

‘당사자 부재’라는 상황은 뒷담화의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부풀었다가 이내 터지는 풍선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면 사라지는 걸로 보이지만, 자기 확신이 강화되고 분심만 쌓일 뿐. 사람을 소외시키는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부조리가 심한 곳에서는 약자 사이의 위안과 유대감을 확인하는 통로이자, 악행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성숙한 인간 되기는 이 피할 수 없는 ‘뒷담화’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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