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승근 ㅣ 논설위원
370일 만에 열리는 기자회견인 만큼 기대가 컸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는 깔끔하게 정리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직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사면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악담했는데 치졸하다. 당사자의 반성과 국민 공감대를 사면의 대전제로 제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답변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집값 대책은 당장 뚜렷한 해법이 없을 것이다. 24차례 크고 작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공급이 충분하고 투기와의 전쟁에서 이긴다고 자신했던 문 대통령은 결국 ‘수요 예측과 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공급 확대도 약속했다. 소를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급등한 집값으로 이미 심해진 자산 불평등, 중산·서민층의 열패감과 박탈감은 회복이 어렵겠지만 문 대통령 임기 뒤에라도 주택 공급이 늘고 주거가 안정된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엔 가슴이 콱 막혔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윤 총장이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인지 여전히 궁금하다. 진심이라 해도 너무 늦었다. 윤 총장이 “퇴임 후 국민 봉사” 발언으로 논란을 촉발한 게 지난해 10월22일이다. 윤 총장이 선을 넘었다며 정치를 하려면 총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한 건 더불어민주당이다. 이낙연 대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새로 지명된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목청을 높였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별이 보일 때”라며 윤 총장에게 대선 출마 결단을 촉구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우리 총장은 정치하지 않는다’고 간단히 결론 내렸다.
‘추-윤 갈등’에 대한 답변도 실망스럽다.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워낙 오랫동안 이어졌던 수사 관행, 문화 이런 것을 다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관점,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검찰총장 징계 처분을 사법부가 집행정지한 것도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뤄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원리가 아주 건강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동안 조용한 것이 좋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갈등이 시끄럽고 불편해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1년여 동안 이어진 갈등과 대립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점과 견해의 차이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검찰주의자 윤석열’로 상징되는 검찰조직과,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세력 사이의 피 말리는 전투였다. 그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먼지털기 수사’로 낙마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를 이어 총대를 멘 추미애 장관도 결국 중도하차한다. 검찰총장 징계안을 수용한 건 문 대통령이다.
“저는 감사원 감사가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의 수사도 감사원으로부터 수사기관으로 이첩된 데 따라서 이뤄진 것이지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 대통령 발언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감사원과 검찰이 에너지 정책에 대해 ‘선택적 감사’, ‘정치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했더니 주인행세를 한다”고 비난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당장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이다.
임기 5년차를 맞아 갈등은 봉합하고 ‘포용과 안정 기조’로 전환하려는 문 대통령의 고심에 찬 답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사태를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한 건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좀 더 일찍 추 장관에게 대통령의 생각과 철학을 명확히 전달하고 자제시켰어야 한다. 아랫사람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자신의 뜻과 달리 감정싸움을 했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 총장은 이미 정치를 하고 있는데 면죄부를 준 게 아닌지, 또 ‘정치의 사법화’를 ‘민주주의 원리’로 너무 단순화한 건 아닌지도 곱씹어봐야 한다. 대통령은 관전자가 아니다. 국정 전반에 사실상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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