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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착함’만 남은 대통령 / 안영춘

등록 2021-01-21 16:36수정 2021-01-22 02:43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정국 이슈 및 올해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정국 이슈 및 올해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안영춘 논설위원

새해 기자회견 중계를 보고 나서 문재인 대통령한테 받은 인상은 ‘착함’이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지난 한 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갈등 사안들이 그의 반듯한 표현을 거쳐 지당한 것이 되는 걸 볼 때만 해도, 갈등을 회피하거나 관리하려 한다는 느낌 정도였다. 그럼 집권 5년차의 ‘무력감’ 혹은 ‘노회함’쯤으로 봐야 할 텐데, 표상과 실재가 그다지 밀착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착함의 이미지는 문 대통령의 아동 학대 관련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을 듣고 나서 한층 또렷해졌다.

그의 표현에 오해 소지가 있었던 건 맞다. 숲을 빼고 나무만 말한 게 컸다. 그러나 그걸 ‘인신매매’에 빗댄 비판은 과할뿐더러 논점에서도 이탈했다. 나는 문 대통령의 ‘말실수’가 피해 아동의 고통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들어가 봤다면 주어부터 ‘입양 부모’에서 ‘아이’로 바뀌었을 거다. 착함은 상대에게 건너가 감응하기보다 제 위치에서 연민하는 경향이 있다. 길 가는 장애인에게 돈을 쥐여주는 비장애인의 경우처럼, 선의가 가해로 뒤집히기도 한다.

우리는 생태와 노동에 좀 더 친화적인 제품을 돈 더 주고 사는 걸 ‘착한 소비’라 부른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에게 임대료를 깎아주면 ‘착한 임대인’이 되고, 나라에서는 세금도 덜어준다. 그러나 ‘착한 소비’라는 표현은 생태와 노동의 착취에 연루된 자본주의적 소비의 불편한 속성을 가리는 효과가 있다. ‘착한 임대인’이라는 표현은 바이러스 창궐에 아무 책임도 없이 영업제한을 당한 임차인한테서 따박따박 월세를 받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구조인지 물을 기회를 차단한다.

착함은 행복과 짝을 이루는 이 시대의 독보적인 미덕이다. 나는 어려서 영화를 보며 “누가 우리 편이야?”라고 물었다. 내 아이는 “저 사람 착해?”라고 묻는다. 착함은 무해하고 무구하다. 꼭 필요한 도덕적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의 도구가 되는 순간 갈등을 회피하도록 유인한다. 갈등은 안온한 행복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구조에도 무관심하게 한다. 행복은 구조가 아닌 현상에서 건너오는 감정 아닌가. 착함만 가득한 행복 세상은 필수영양소 가운데 비타민만 달랑 남은 밥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친노동적’인가 ‘반노동적’인가. 모범답안이 어느 쪽이 됐든, 노동에 관한 철학을 묻는 것이다. ‘노동 존중’이라는 착한 수사(修辭)만으로는 판단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과정을 보자. 10만명이 청원한 법안이 여당의 외면을 받는 동안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침내 나온 정부 법안은 산재 발생의 구조와는 거리가 멀었고, 국회를 거치면서 껍데기만 남았다. 법안 명칭에서 ‘기업’도 빠졌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해 1000명이 죽고 사는 문제를 두고, 문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자기 말을 이윤의 논리에 팔아넘겼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혹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용자도 산재 사망 위험에 방치된 노동자만큼 약자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나아가 약한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산재로부터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면 된다고 믿어버린 건 아닐까. 맞다면, 그의 착함은 현 중대재해처벌법이 참극을 막기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노동자라면 다 아는 사실을 그만 모르게 만든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 대통령을 그래도 안다는 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본디 착한 사람이다. 물론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필수영양소를 고루 갖춘 사람이었다. 혹독한 시련에 단련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사람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가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작과 끝이 같았던가. 악인 캐릭터였던 대통령들만이 캐릭터를 지켜냈다. 다만 문 대통령의 필수영양소를 소진시킨 게 정적들뿐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의 맹목적인 지지가 앗아간 영양소는 없을까.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이 갈등을 회피하고 관리만 해도 괜찮은 시간일 리 없다. 기업의 자발성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코로나로 더 벌어진 양극화의 거리가 너무 아득하다. ‘옛 동지’인 해고노동자 김진숙은 투병 중인 몸으로 복직을 요구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다. 한 걸음 떨어져 착하게 연민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갈등 한가운데로 몸을 내던지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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