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14일,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나눠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성소수자 퍼레이드에는 항상 무지개 깃발이 앞장선다. 성소수자의 무지개는 남색이 빠진 여섯 색깔 무지개다. 박종식 기자가 찍었다.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이 논문의 저자 중 한명 이상은 성소수자 연구자이다.” 논문 저자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이런 저자 다양성 알림 문구를 올해에 일부 논문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성소수자 외에도 소수민족, 장애인 과학자가 연구에 참여했다면, 연구진이 논문 말미에 이를 밝힐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논문 출판 정책이 실험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수자로서 편견과 차별을 겪는 연구자도 과학 활동을 당당하게 함께하며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논문에 밝힘으로써, 다양성을 가시화하고 또한 다른 소수자들의 과학 활동 참여를 북돋우는 본보기(롤모델)가 되게 하자는 취지다. 그저 뜻있는 몇몇 과학자의 제안이 아니다. <네이처> <사이언스>와 더불어 대표적 과학저널로 꼽히는 <셀>이 앞장서 벌이는 실험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셀>의 신년호 사설에는 과학저널에서 평소 보기 힘든 말이 가득하다. 최근 몇년 동안 뜨거운 이슈가 된 과학계 안팎의 불평등과 편견을 돌아보며 사회적 정의를 위한 과학계의 동참을 강조한다. “지구촌 사회가 다양한 개인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과학도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고 그런 개인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과학자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환영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과학 활동은 그런 포용성과 다양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학술지들을 무대로 삼아 긍정적 변화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자 한다.”
<셀>을 펴내는 셀 프레스는 <뉴런>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학술지 50여종을 함께 출판하고 있는데, 그 학술지의 논문 저자들에게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위해 기울인 각자의 노력을 밝혀 과학자 사회와 공유하자고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실험에 쓰는 세포나 동물, 그리고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성과 젠더, 인종의 편향을 없애려는 노력뿐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소수민족 연구자와 함께하며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고자 기울인 노력을 ‘포용성과 다양성’ 선언 형식으로 논문에 밝힐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에 동참할지는 연구자들의 선택에 맡기고 논문 심사 과정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했다.
셀의 신선한 실험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 어떤 효과를 낼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해 동안의 실험을 연말에 결산해 평가하고서 이런 시도를 지속할지 결정할 예정이라 한다. 포용성과 다양성 선언을 담는 논문 양식의 실험이 긍정 효과를 내어 안착한다면, 그래서 과학이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이며 사회적 소수에 속하는 연구자들도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함께하는 활동임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자리잡는다면, 언뜻 작게 보이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