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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역사 문제의 끝이란 무엇일까 / 김소연

등록 2021-02-04 18:48수정 2021-02-05 02:42

고노 요헤이(왼쪽) 전 관방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도쿄/AFP 연합뉴스
고노 요헤이(왼쪽) 전 관방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도쿄/AFP 연합뉴스

김소연 l 도쿄 특파원

일본에선 한국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 ‘사과와 보상을 했는데도 계속 요구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꽤 강하다. 2018년 일본 도쿄에 있을 때, 한 대학이 주최한 토론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일본 교수가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한다며 ‘피해자 스토커’라는 표현을 사용해 놀란 기억이 있다. 그 자리엔 한국 교수도 토론자로 참석하고 있었다.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혀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두 나라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했다. 또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한 간 나오토 담화(2010년) 등 여러 차례 사과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과를 근본부터 흔든 것도 일본 정부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3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2014년엔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되는 ‘위안부’ 피해자 조사에 문제가 있다며 검증을 시작했다. 수개월 조사 끝에 담화를 수정할 만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한 채, ‘문구를 한일이 조율했다’고 하는 등 흠집 내기에 집중했다. 이 담화가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는 우익 세력에 힘을 실어줬다.

일본의 역사 되돌리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와 강제동원 관련 서술이 삭제되고 있다. 2019년엔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이 우익들의 협박과 정부의 방조 속에 사흘 만에 전시가 중단됐다. 예술작품으로도 ‘소녀상’은 일본 땅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 독일의 시민사회가 세운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철거 압박에 나선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재일동포 등에 대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는 여전하다.

이런 일본이 역사 문제에 있어 “모든 것은 끝났다”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두번의 합의와 역대 총리들의 담화를 그저 자신들의 역사적 치부를 드러내지 못하게 ‘입막음’용으로만 사용하는데, 어떻게 이 문제가 끝이 날 수 있을까.

일본의 전쟁 책임과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최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일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해자가 사실과 책임을 인정해 사죄하고, 그 증거로 금전 보상을 할 것, 마지막으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제를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세번째가 없으면 첫번째, 두번째 합의를 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년 넘게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발굴과 한일 학생들이 참여한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을 주도하고 있는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도 지난해 11월 국제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아시아는 경제적 의존관계는 깊어졌지만 벽이 여전히 높다.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인식이 없는 속에서 이뤄진 기능적이고 피상적인 접촉은 오히려 서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한일 정부가 외교적으로 합의를 했다고 해도 역사 문제는 바로 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해와 피해가 있는 역사 문제를 놓고 ‘최소한의 공통된 인식’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역사 문제에 대해 쉽게 끝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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