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ㅣ 논설위원
<한겨레> 창간 첫해인 33년 전 수습을 갓 뗀 초보기자의 첫 출입처는 교육 현장이었다. 오랫동안 숨겨져온 사학비리를 고발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교육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한겨레>가 취재현장에 도착하면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성 언론은 교육 현장의 절박한 외침을 철저히 외면했다. “사실에 입각한 진실보도”를 하는 것은 새 신문 <한겨레>뿐이었다.
1987년 9월 <한겨레> 창간 발의 선언문의 핵심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기성 언론과의 차별화였다. “권력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 온갖 은폐와 왜곡, 선정적·상업적 보도에 급급함으로써 주권자의 시야를 가리고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며 권력 지탱의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해온 언론기업들….”
사학은 상대적으로 작은 권력이다. 진짜 권력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재벌)이다. 기성 언론에 이들은 ‘성역’이자 ‘금기’였다. <한겨레>가 이들 ‘성역’을 철저히 배격한 것은 당연했다. 언론이 권력에 예속 또는 유착돼서는 성역을 깨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겨레>가 창간사에서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천명한 것 또한 필연이었다. “<한겨레>는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성역 없는 한겨레”의 원칙은 권력의 불법비리를 파헤치는 숱한 특종의 원동력이었다.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종’부터, 멀게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고문기술자 이근안 특종’과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김현철 비리 특종’까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옷로비 특종’이 말해주듯 <한겨레>는 진보정권이라고 결코 예외를 두지 않았다.
광고를 쥐락펴락하는 자본권력도 <한겨레>의 감시를 피하지 못했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특종’은 이건희 회장의 기소로 이어졌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 반대 보도’는 특종은 아니었지만, 그 못지않게 큰 의미가 있는 사례다. 다른 언론은 모두 삼성의 눈치를 보며 합병에 찬성했지만, <한겨레>는 홀로 시장의 반대 목소리를 전했다. 불공정합병을 무리하게 강행하다가는 나중에 큰 위기가 닥칠 수 있음도 경고했다.
하지만 삼성은 <한겨레>의 고언을 무시했다. 그 이후는 국민 모두가 잘 아는 일이다. 합병 등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며 국정농단세력에 86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이재용 부회장은 실형선고를 받았다. 가정이지만, 삼성이 그때 <한겨레> 고언을 귀담아들었다면, 다른 언론도 <한겨레>와 함께 무리한 합병에 반대했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왜 ‘성역 없는 언론’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좋은 언론과 권력의 바람직한 관계는 선진국도 다르지 않다. 이지도어 파인스타인 스톤은 미국에서 ‘20세기 최고의 독립언론인’으로 존경받는다. 그는 1964년 미 정부가 베트남전 확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것을 특종보도했다. 그는 평소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신조로 삼았다.
<한겨레>의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지난해 8월 ‘말 거는 한겨레’ 칼럼에서 영국의 진보지 <가디언> 사례를 소개했다. “<가디언>은 보수당 18년의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정책에 완강히 맞섰다. 1997년 총선에서 정권교체 기회가 오자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을 지지했다. 그런데 노동당이 집권하자 집요한 비판자로 돌아섰다. (중략) 1998년 12월 이 신문이 터뜨린 내각 인사들의 금전거래 특종은 집권 2년여의 노동당 정권을 그로기로 몰고 갔다.”
‘성역 없는 한겨레’가 지난 30년간 얼마나 충실히 실천됐는지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재임 중 회원 기업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경제단체의 ‘성역’을 과감히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경제, 국민의 이익과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박 회장과 차담을 나누다가 <한겨레>가 창간 초기보다 힘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그 이유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겨레>의 가장 큰 힘은 ‘성역’이 없다는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노동운동, 진보진영이라는 새로운 성역이 생겼다. 또 <한겨레> 기자들이 초기에는 팩트(사실)를 보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주장이 앞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겨레>의 젊은 기자들이 “30년 동안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가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 (중략) 어설픈 정권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일부 독자는 “이해할 수 없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조·중·동과 똑같다” “한겨레 기자들이 보수적으로 변했다”며 구독중지 신청을 하기도 했다. 성명의 일부 표현이 다소 과했을 수도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관련 보도’ 등 문제기사로 지적된 사례에 100% 공감을 못 할 수도 있다.
<한겨레>는 편집방향과 관련해 이견이 있을 경우 젊은 기자들이 앞장서 문제를 제기한 오랜 전통이 있다. 젊은 기자들의 공개적인 문제제기와 활발한 토론은 오늘날의 <한겨레>를 만든 소중한 자산이다. 다른 언론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한겨레> 고유의 디엔에이(DNA)라고 할 수 있다.
성명 취지도 <한겨레>가 그동안 견지해온 원칙과 다르지 않다. 이후 사내 토론회에서도 진실 추구와 권력에 대한 공정한 비판, 즉 ‘성역 없는 한겨레’가 중요하다는 데 대부분 공감했다.
<한겨레> 역사에서 권력과의 관계, 특히 진보세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기자 개인별 인식의 차이, 세대 간의 경험 차이가 존재한다. 원칙에 동의해도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에서는 경중이 다를 수 있다. 요즘은 민주 대 반민주로 간단히 구분되는 시대도 아니다. 진보진영 안에서도 기득권 논란이 제기된다. 현장기자와 데스크 간의 소통 부족은 항상 따라다닌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결국 해답은 ‘성역 없는 한겨레’의 재확인에 있다. <한겨레>가 지향하는 민주적 가치를 지지하는 것과 세력(집단)을 옹호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고 조중동을 비판하는 <한겨레>로서는 ‘내로남불’ ‘제 식구 봐주기’는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다.
한번의 성명서나 토론회로 문제가 풀리기는 힘들다. <한겨레>의 구성원 모두 매일 거울을 닦듯이 시대 상황에 맞게 창간정신을 끊임없이 구현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성명을 낸 젊은 기자들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용기 있는 젊은 기자들의 역할은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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