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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금태섭이 드러낸 ‘고인 물 정치’

등록 2021-02-10 14:50수정 2021-02-11 02:12

“과거에 집착해서 편을 나누는 정치”를 하는 데 실망해서 민주당을 탈당했다는 그가 국민의힘이나 국민의당에선 어떤 미래와 희망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말로는 과거의 정치를 넘어서겠다며 또 다른 과거로 손쉽게 안착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정치가 왜 ‘고인 물’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제3지대 단일화’ 방식을 협의하기 위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3월1일까지 1차 단일화를 한 뒤 국민의힘 후보와 2차 단일화에 나서기로 7일 최종 합의했다. 공동취재사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제3지대 단일화’ 방식을 협의하기 위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3월1일까지 1차 단일화를 한 뒤 국민의힘 후보와 2차 단일화에 나서기로 7일 최종 합의했다. 공동취재사진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7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제3지대 단일화’에 합의했다. 두 사람은 2월 한달 동안 두차례 토론회를 열어 국민에게 현 정권 평가와 서울시정 비전에 대한 지지를 구한 뒤 3월1일 단일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 물론 이것이 최종 결선은 아니다. 여기서 이긴 사람은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겨루는 국민의힘 경선 승자와 2차 단일화에 나서게 된다. 두 사람의 1차 단일화 합의를 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안철수나 금태섭이나 다 우리 사람”이라며 흐뭇해했다.

단일화를 하든 독자 출마를 하든, 그건 정치인들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 흔히 ‘가치의 단일화’를 말하지만, 현실 정치에선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게 단일화의 핵심 요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정치공학적 단일화 작업에 금태섭 전 의원이 끼어든 것은 안타깝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 뒤로 걷는 한국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은 ‘그때 그 사람들’ 경쟁이 되었다. 민주당의 박영선·우상호, 국민의힘 유력 주자인 나경원·오세훈 그리고 안철수까지, 꼭 10년 전 박원순 전 시장이 처음 당선될 때 그와 경쟁하거나 협력했던 인물들이다. 박 전 시장의 빈자리를 놓고 10년 전 그 사람들이 다투는 상황은 우리 정치가 ‘고인 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그럴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정치는 왜 한치도 변하지 않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걸까. 금태섭 전 의원의 행보가 이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던진다.

모두 알다시피 금 전 의원이 민주당을 나온 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기권표를 던져 당 지도부와 당원들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당내 경선에서 패배해 국회의원직을 잃었고, 당의 징계 처분도 받았다.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금 전 의원 논리는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그래서 그가 탈당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정도 이견도 수용 못하냐”고 민주당의 편협함을 비판했다.

금 전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가 관심을 끈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퇴행적인 이유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각축을 벌이는데, 그래도 금태섭 정도면 당선 여부를 떠나 좀 더 미래를 지향하는 선거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금 전 의원이 출마 기자회견에서 ‘미래를 위한 변화’를 강조한 것도 그런 뜻으로 읽혔다.

누가 최종 단일후보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금 전 의원은 아닐 거라고 많은 이들은 예상한다. 결국 그는 안철수·나경원·오세훈 후보 단일화의 장식물에 그칠 거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에 집착해서 편을 나누는 정치”를 하는 데 실망해서 민주당을 탈당했다는 그가 국민의힘이나 국민의당에선 어떤 미래와 희망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말로는 과거의 정치를 넘어서겠다며 또 다른 과거로 손쉽게 안착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정치가 왜 ‘고인 물’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새로운 인물이 끝까지 완주할 때 유권자들이 보게 될 또 다른 비전과 가능성의 기회를 아예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금 전 의원은 제1야당에 의지하는 게 자신의 정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이게 어디 금 전 의원뿐이랴. 1996년 15대 총선 무렵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젊은 피’라는 말이 유행하며 젊고 새로운 인사들이 여야 정치권에 많이 수혈됐다. 지금 민주당 핵심에 있는 이른바 ‘86세대’ 국회의원들도 그런 예이다. 그 ‘젊은 피’의 대다수는 스스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오랫동안 당 주류를 도우면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만족했다. 내년 대선에는 그때 ‘젊은 피’였던 여야의 86세대들이 여럿 경선전에 뛰어들겠지만, 이젠 그들 역시 과거를 상징하는 인물로 유권자에게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다.

2004년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왜 참가하지 않느냐고 앨 고어 전 부통령에게 지지자들이 물었다. 앨 고어는 2000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초유의 ‘플로리다 재검표’ 끝에 조지 부시에게 아깝게 패했다. 고어의 답은 이랬다. “내가 출마하면 선거 초점은 2000년 대선으로 다시 돌려질 게 분명하다. 선거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야 한다.”

나이가 젊다고 ‘새로운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건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주저앉는 금태섭을 보는 건 씁쓸한 일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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