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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꼰대 근성

등록 2021-02-14 14:07수정 2021-02-15 12:25

‘강남좌파’로 불리는 고위 공직자들은 이런 ‘공사 구분의 원칙’을 지나칠 정도로 잘 지켜 자주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자기 자녀는 특목고에 보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게 과연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는 별도로 따져볼 문제이지만, 왜 고위 공직자도 아닌 보통사람들이 더 언행일치에 집착하는지는 의문이다. 너무 착하기 때문이라는 게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인데, 그 착함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386 세대유감>이란 책을 읽다가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꼰대 근성”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이는 젊은 세대가 꼰대를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지만, 어떤 상황에선 그런 근성이 우리 모두의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너무 착하거나 양심적이기 때문에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경우가 있다는 점도 나의 관심사였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씀드려보겠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모델은 전국민으로 하여금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용이 되기 위한 각자도생에 몰두하게 만들고 다수의 미꾸라지들에게 열패감을 주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은 개천의 미꾸라지들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문제의식일 뿐, 나는 내 주변에서 용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더불어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건 사적 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모순인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공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비판했으면 사적으로도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지역에서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애쓰는 학부모가 있다. 당연하거니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학부모가 지방정부나 공공기관들은 공적 차원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지역대학을 키우는 일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모순인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정서를 갖고 있는 지역민들은 자신의 심리적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지역대학 발전에 무관심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지역대학을 폄하하기도 한다. 이런 풍토에서 세상을 바꾸긴 어려워진다. “나 하나 살아가기도 바쁜데” 하는 각자도생의 원리를 공사 구분 없이 적용하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의 해법 모색은 위선이거나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해진다.

연고주의는 사적으론 행복의 근원이지만, 연고주의가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 건 악덕이다. 공사 구분을 반드시 해줘야 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사적으론 장려할 일이지만, 공적으론 금기시해야 한다는 게 왜 모순이란 말인가? 한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구조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조의 문제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사적으론 구조에 순응하면서 공적으론 구조를 깨자고 외치는 건 모순이 아니다. 이걸 모순이라고 한다면, 우린 영영 이 잘못된 구조에서 탈출할 길이 없어지고 만다.

흥미로운 건 이른바 ‘강남좌파’로 불리는 고위 공직자들은 이런 ‘공사 구분의 원칙’을 지나칠 정도로 잘 지켜 자주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자기 자녀는 특목고에 보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게 과연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는 별도로 따져볼 문제이지만, 왜 고위 공직자도 아닌 보통사람들이 더 언행일치에 집착하는지는 의문이다. 너무 착하기 때문이라는 게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인데, 그 착함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을 보자. 치미는 분노를 달랠 겸 좀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문재인 정권보다는 지방민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방민만이라도 그간 교육자원 분산을 포함한 국가균형발전을 강하게 요구해왔다면, 서울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까지 폭등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용어가 과격하다고 눈살을 찌푸릴 독자들이 있겠지만, 지방은 ‘내부 식민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지방에서 이렇다 할 반식민지 투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도 온건하고 미약했다. 지방의 힘은 선거에서 나오건만, 지방민들은 역대 모든 대선·총선·지방선거에서 식민지의 위상에서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모든 후보들에게 균형발전 의제를 요구한 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자기 지역에 국한된 이익을 위해선 사납게 투쟁해도 현 ‘서울공화국’ 체제를 문제 삼은 적은 없었다. 왜 그럴까? 그게 바로 공사 구분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한국인은 자식에 죽고 산다. 자식을 서울로 보내고 나면 ‘잠재적 서울시민’의 눈으로 지방을 바라본다. 일관성을 지키려는 착한 심성 때문이겠지만, 이제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꼰대 근성”과는 작별을 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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