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AFP 연합뉴스
황준범 | 워싱턴 특파원
20일로 출범 한달을 맞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에도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을 비롯해 외교·국방 장관, 안보실장 사이에 통화가 이뤄졌고 주미대사를 통한 워싱턴 현지에서의 대면 조율도 이뤄지고 있다. 검토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따라 한반도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멈춰선 평화 열차에 다시 오를지, 2017년 이전 같은 갈등과 긴장의 살얼음판 위로 되돌아갈지가 갈린다.
지금까지 바이든과 외교안보 참모들이 내놓은 발언들을 보면, 반트럼프 기반 위에 압박적 접근에 무게를 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은 후보 시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진 찍기만 하면서 경제적 압박을 낮추고 군사훈련도 중단했으며, 인권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김정은의 세차례 만남이 북한 정권에 정당성만 부여했고 김정은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다는 게 바이든과 민주당 주류의 인식이다. 국무부의 토니 블링컨 장관과 웬디 셔먼 부장관, 성 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 백악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 조정관 등 바이든 정부의 한반도 담당자들이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라는 점도 양면이 있다. 정책 검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북한 비핵화 회의론에 바탕한 압박 강화로 기울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의 관성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트럼프식 ‘개인 외교’를 강하게 비판해온 바이든의 특징이 ‘전문가들의 컨센서스’ 중시라고 볼 때,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의견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에 대한 바이든의 강한 거부 정서와 별개로, 트럼프-김정은의 시도와 실패에서 재확인된 교훈은 분명하다. 북한 비핵화는 몇차례 정상회담으로 단숨에 이뤄지지 않으며, 북한이 최후의 안전보장 장치로 여기는 핵무기를 먼저 다 포기하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미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돼온 도발-압박-대화-결렬의 악순환 고리에서 앞의 두 단계는 서로의 시간과 역량을 잡아먹는 소모적 과정이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따라서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유지하되,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일부 해제 같은 ‘스몰딜’부터 시작하는 단계적·동시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바마 시절 국방부의 북한 담당 선임보좌관으로 일한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연말 기고에서 바이든 정부에 “과감한 평화 공세를 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북-미 긴장 완화를 위해서 실무협상 재개 의향,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단,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단, 부분적·시한부 제재 해제, 인도적 지원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조처를 담아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라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압박이냐 대화냐 양자택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그것은 버락 오바마 2기의 압박 정책인 ‘전략적 인내’의 사실상 재탕이 될 수도 있고, 빌 클린턴 2기의 포괄적·단계적 접근인 ‘페리 프로세스’를 뛰어넘는 무엇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등 국내 상황 탓도 있겠으나, 일단 미 정부의 정책 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북-미가 서로를 자극할 행동이나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한반도 해법이 새롭게 그려질 수 있도록 남·북·미 모두 신중한 자세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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